내전 개입해 온 사우디 정부 압박
예멘정부·반군 협상 2년만에 재개
구호물자 반입지 전면전 배제 논의
'100년 만의 기아' 해결될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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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CNN·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유엔(UN) 중재로 마련된 예멘 평화협상을 위해 정부 대표단과 후티 반군 대표단이 5일(현지시간) 스웨덴에 도착했으며, 협상은 일주일 동안 비공식 회담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협상의 핵심 목표는 민간인 수천 명이 갇혀 있는 반군 장악 지역 호데이다에서의 전면전(全面戰)을 막는 것이다. 호데이다 항구는 반군의 ‘무기 밀수 거점’이자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공습 지역이다. 민간인을 위한 구호물자 80% 이상이 유입되는 생명선이기도 하다. 유엔은 이 항구시설이 파괴되면 기아 사망자는 재앙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화협상에서 단번에 내전 종식이라는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인도적 지원과 적대행위 일시 중지, 평화협상 정례화, 긴장완화 지대 또는 비행금지 구역 합의 등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사우디는 이번 평화협상을 위해 치료가 필요한 반군 부상자 50명을 오만으로 이송하면서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 양측 포로교환 협상도 시작됐다.
4년간 지속된 내전은 최악의 재앙을 초래했다. 최소 6660명의 민간인이 죽었고, 1만560여 명이 다쳤다. 영유아 8만5000여 명은 극심한 기아로 사망했다. 예멘 인구의 75%인 2200만명은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지난 4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내년엔 예멘의 식량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인도지원조정국(OCHA)은 같은 날 인도주의 사업 지원 순위에서 처음으로 예멘을 시리아 위로 올렸다. OCHA 조사에 따르면 예멘 인구 1200만~1300만명이 기근에 처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100년래 인류가 처한 최악의 기아 사태에 직면했다고 OCHA는 지적했다.
2015년 3월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에미리트(UAE)·예멘 정부 연합군은 본격적인 반군 소탕에 들어갔다. 반군에 대한 공격 수위가 높아지면서 무차별적이고 과도한 공습으로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확대됐다. 특히 반군의 근거지이자 예멘 물류 요충지인 호데이다 항구 봉쇄는 극심한 식량난을 초래했다. 반군을 구석으로 몰아넣으려는 전략이었지만 지역 주민 역시 국제사회의 원조길이 막히면서 함께 피해를 봤다. 사막 국가 예멘은 식량의 90%를 수입한다.
국제사회가 그동안 눈감아 왔던 예멘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데는 카슈끄지의 죽음이 큰 역할을 했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국제적 입지가 좁아진 사우디를 국제사회가 예멘 내전과 관련해 압박하기 시작한 것. 국제사회와 미국 의회는 카슈끄지 사건 배후로 사우디 왕실을 의심하고 있다. 카슈끄지는 생전에 ‘중동 최빈국’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 정부를 거세게 비난해 왔다.
텔레그래프는 “카슈끄지 한 명의 죽음이 다수 예멘 사람의 죽음과 기아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카슈끄지의 죽음이 세계를 눈 뜨게 했다”고 전했다. 로버트 마디니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유엔 참사관은 “평화협상은 예멘 내전 내내 보지 못했던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며 “(평화협상은) 예멘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인도적 문제들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의미있는 정치적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