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정부와 반군은 지난달 13일 호데이다 지역에서 무력 행위를 중단하고 이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무인기 공격 등 충돌을 이어가며 불안정한 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유니세프(UNICEF)
중동 예멘에서 4년 만에 내전의 총성이 멎었다. 무장분쟁 및 테러 자료를 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에 따르면 민간인 6만여명(유엔 추산 1만명)은 목숨을 잃었다. 질병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증했다. 공공의료 담당기관 및 관련예산 부재로 질병 감염 통제 기능이 무너졌기 때문. 에이즈 감염의 직접적 원인인 비위생적 주사기 사용, 성병 예방조치 없는 성행위 등을 감시하고 교육해야 할 정부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중동 전문 매체 알자지라는 22일(현지시간) “내전으로 폐허가 된 예멘에서 에이즈 환자들이 고립되고 점점 잊히고 있다”며 정부의 의료시스템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봉쇄 조치로 국제 원조를 받을 길도 막혔다고 보도했다. 예멘 후티 반군은 2014년 수도인 사나를 점령한 뒤 정부를 축출한 상태다.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 후티 반군에 밀려난 예멘 정부는 남부 아덴을 임시 수도로 삼고 임시정부를 사우디 리야드에 세웠다.
후티 반군이 운영하는 보건부서의 책임자 타하 알무타와켈은 “오랜 내전 기간 에이즈 예방 및 치료 지원 예산은 0%였다”며 “예산 무할당은 의료 서비스 관련 공무원들의 임금 미지급, 의료용품 미비 등을 초래하며 보건 시스템을 마비시켰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예멘의 에이즈 감염자가 2012년 7400명에서 내전 발발 이듬해인 2016년 99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에이즈 치료를 받은 감염자는 2012년 700명, 2014년 1400명, 2016년 1800명에 불과하다. 에이즈 사망자는 2012년 최소 200명에서 2016년 최대 1000명으로 늘었다. 알무타와켈은 “국제사회가 제공한 80만 달러(약 9억원)의 지원금으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의약품은 국제기구 도움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우디의 봉쇄 조치로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 대립으로 시작된 내전은 2015년 3월 사우디 개입으로 본격화했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이 장악한 호데이다항을 2017년부터 봉쇄했다. 이 곳은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으로부터 무기를 밀반입하는 통로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의 봉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하지만 호데이다항은 민간인을 위한 식량·의료품 등 국제사회의 구호물자 80% 이상이 유입되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사우디가 그 같은 생명줄을 막아버리면서 예멘의 기아는 물론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도 늘었다.
후티 반군 수입의 27%를 차지하는 호데이다항이 봉쇄되면서 반군 장악 지역의 120만명에 달하는 공공기관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도 끊겼다. 예멘 알윰후리야 병원의 에이즈연구소 소속 이브라힘 알바블리 박사는 “후티 반군의 보건·교육·위생 서비스 제공이 막히면서 그로 인한 파괴적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퍼졌다”며 “의사 등 보건서비스 제공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면 환자들도 보살핌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의 중동지역 고문인 엘타엡 엘라민은 “사우디 봉쇄 조치가 에이즈 감염자들의 이용 가능한 의약품 및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떨어트렸다”며 “공공보건 기반시설·의료 서비스 부족과 공급체계 단절은 에이즈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멘 정부와 반군은 지난달 18일 유엔 중재 하에 가까스로 휴전에 합의했지만 합의 존속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예멘 정부는 지난 10일 반군이 아덴 외곽 알아나드 공군기지를 무인기로 공격했다며 휴전 합의를 악용해 병력을 재배치했다고 비난했다. 반군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예멘 정부와 아랍 동맹군이 휴전 합의 발표 후 1924차례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