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가 발로 뜁니다. 아시아에 있는 아시아투데이 통신원들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시아의 다양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고 들어본 그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주변에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게 아닙니다. 아시아투데이는 꼭 고위관직자이거나 유명인이 아니어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아시아인들의 ‘인간극장’을 담아내겠습니다.
(1부에 이어)
아시아투데이 정근애 이스탄불 통신원·정재호 기자 = 시리아 난민에 대한 터키 정부의 지원도 일찍이 터키에 들어왔거나 가족 단위로 들어온 난민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알리 씨는 터키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기 전부터 이불 가게, 관광지 기념품 가게, 터키 디저트 바클라바 가게 등에서 일해야 했다.
가족, 친구와 떨어진 것만큼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터키인들의 차별과 편견이었다. 터키 내 시리아 난민이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터키인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공무원들도 시리아 난민에게는 소리를 지르거나 밀치는 등 거칠게 대했다. 난민이라는 이유로 적은 월급을 받아야 했고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며 계좌 개설도 어려웠다.
“터키에 사는 시리아 난민 중에도 의사, 대학생, 공무원, 부자 등 다양한 사람이 있어요. 즉 보통 사람이라는 거죠. 돈이 없거나 위험한 사람이어서 온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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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 오브 갓(Lamb of God)의 ‘나우 유브 갓 썸씽 투 다이 포(Now You’ve Got Something to Die for)‘를 불렀어요. 그때 이보다 잘 어울리는 노래가 없었죠. 관객들의 호응을 잊을 수 없어요. 처음으로 진짜 메탈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흥분했습니다.”
처음에는 나가라고 아우성이었던 관객들은 그의 열정적인 무대에 곧 환호했다. 단 한 곡이었지만 이를 본 언더테이커스의 보컬 아르센 이바벡치는 단번에 알리 씨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했다. 악기가 없다는 말에 베이스 기타도 사줬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알리 씨의 강점은 메탈 음악에 특화된 목소리와 몸을 사리지 않는 화려한 퍼포먼스다. 언더테이커스에서의 활약이 입소문을 타자 풀테리얼(Furtherial), 아사페이티드(Asafated) 등 다른 굵직한 밴드들도 러브콜을 보냈다. 알리 씨는 이스탄불 메탈헤드 사이에서 점점 더 유명해졌고 라이브 펍은 물론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도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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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어요. 주변 사람들의 모든 지원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도, 더 커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계속하고 싶어요”
지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지만 상황이 진정되면 언제든 다시 관객 앞에 설 계획이다. 알리 씨는 시리아 내전이 하루 빨리 끝나고 이전의 아름다운 나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한국인들도 70년 전 큰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분열하는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싸움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겠죠. 내전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회복되고 저도 어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