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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공표와 알 권리의 충돌은 법조계에서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특히 ‘공인’에 대한 피의사실공표는 예외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권력형 수사가 생중계되는 것도 문제지만, ‘깜깜이 수사’를 통해 사건이 축소되는 건 더 큰 문제라는 데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 등 해외에서는 수사 중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하고, 수사 내용도 자유롭게 보도하며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개가 여론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 간 공방을 통해 다퉈야 할 혐의가 마치 확정적인 범죄인 것처럼 보도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의도적으로 수사상황 등을 언론에 흘리며 의도대로 수사를 이끌고, 피의사실공표의 희생양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피의사실공표와 알 권리 사이의 줄다리기는 ‘이중잣대’, ‘내로남불’로까지 이어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이 고검장 사건과 관련해 첫 재판 전 공소장 공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수사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며 법 조항까지 신설했다. 또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언급하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았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채널A 사건과 관련해 피의사실을 말했다가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피의사실공표를 놓고 복잡한 셈법을 풀기 위해선 결국 누가 누구의 피의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공개했는지가 아니라, 반복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피의사실공표로 침해될 국민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공정성을 높이고, 권력비리 수사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한 공개범위를 확대하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피의사실공표의 관행은 바뀌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