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유적 사례보면 불자의 관심 필요
성파 스님은 이 시대에 맞는 호국불교 행위 중 하나로 민족문화의 발전과 계승을 제시했다. 돌이켜보면 한국불교의 역사·문화는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질 필요가 있다. 정청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해인사를 ‘봉이 김선달’로 비유해 논란이 됐을 때 많은 사람이 해인사 주변에 사찰 소유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더구나 일부 불자들은 해인사 땅이 왜 이렇게 많냐며 무소유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때 해인사를 옹호한 쪽은 불자보다 전쟁사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해인사 같은 대형 사찰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 기지로 군수품 보급과 승병사령부로 활용됐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활약은 눈부셨다. 가장 치열한 백병전에서 관군이 도망칠 때 승병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불교계를 깔보던 조선 조정도 전쟁 후 승려들의 위상을 제고할 수밖에 없었다.
해인사 홍제암만해도 왜란 때 승병 대장이던 사명대사의 말년 거처를 위해 선조가 하사해 창건한 암자다. 당연히 본사인 해인사도 왜란 이후 시주받은 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명대사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승병들의 역사를 자세히 알았다면 ‘반일(反日)’을 외치던 국회의원이 해인사를 봉이 김선달이라고 가볍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일제강점기 홍제암 승려들은 사명대사 부도(사리탑)가 훼손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암자 뒤편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의 부도를 숨겼다. 사명대사의 공적비가 파손당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어려운 시절이 가고 평화가 왔음에도 사명대사 부도는 지금도 찾기 어렵다. 문화재 안내판이 다른 부도를 사명대사의 부도라고 가리키고 있어서다. 호국불교는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그 흔적에 남은 오류를 방치하는 실정이 이와 같다. 민족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달라는 성파 스님의 말씀이 와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