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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생일날 전사한 미 해병과 33개월 중공군 포로 포병의 한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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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3. 05. 31. 06:19

미 해병대 일병 "한국민 자유 수호, 애국적 의무"
자진 입대해 20세 생일날 전사
여동생 "'자유, 공짜 아니다', 미래 세대 알아야"
압록강서 중공군 포로 미 포병 "북한의 남한 장악 막는 게 임무"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장미꽃이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의 한국전쟁 기념공원 등에서 추념식이 진행됐다.

워싱턴 D.C.와 인근 버지니아·메릴랜드주 한·미 참전용사와 카투사, 그리고 한미동맹 관련 단체들은 제2차 세계대전·걸프전 등 미군 참전용사들과 함께 워싱턴 D.C. 중심가를 관통하는 퍼레이드에 참여한 후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추념식을 진행했다.

강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추념식에는 참전용사와 그 가족,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와 존 틸러리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회장(전 주한미군사령관)·버나드 샴포 전 미8군 사령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추념식에서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은 한국전과 관련된 개인사 및 가족사를 공개했다.
한국전기념공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존 트레인 주니어(JR) 미국 해병 일병의 조카인 수전 하버스씨가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트레인 일병의 여동생인 어머니 콘스탄스 머피 여사의 글을 대독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미 해병대 일병 "한국민 자유 위해 싸우는 게 애국적 의무"...자진 입대해 20세 생일날 실종·사망

콘스탄스 머피 여사(84)는 6살 터울 오빠 미국 해병 존 트레인 주니어(JR) 일병의 이야기를 딸 수전 하버스씨(54)를 통해 전했다.

트레인 일병은 캐나다에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성적이 좋고 피아노를 잘 쳐 어머니는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길 희망했다. 그런데 트레인은 보스턴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한국 국민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애국적인 의무라고 생각하고,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고 해병대에 입대, 1953년 1월 한국에 갔다.

그는 편지로 기도와 하나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며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중 20세 생일날인 1953년 7월 8일, 부대로부터 전투에서 빠져 특별한 날을 즐기라는 말을 듣고도 부대와 함께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실종됐다. 그의 시신은 9개월 후에 발견돼 고향인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 군 묘지에 묻혔다.

그를 잃은 것은 부모님과 모든 가족에게 큰 충격이었다. 머피 여사와 쌍둥이 자매는 간호사가 돼 미 공군에서 복무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1969년, 공군 대위인 남편이 훈련 임무 중 전략폭격기 B52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딸 하버스씨가 태어난 지 11일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전 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 화환이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추념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추념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오빠와 남편 잃은 미 여성 "'자유, 공짜 아니다', 미래 세대 위해 소중히 간직하고 보존해야"

머피 여사는 "오빠와 남편을 모두 잃었지만 자유의 수호자이자 평화의 촉진자로서 우리 군이 세계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한 나의 결의는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해 소중히 간직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내 오빠와 같은 영웅들, 군 복무를 마쳤거나 복무 중인 많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 그러한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나는 미래 세대가 자유의 미래를 위해 싸운 영웅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들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른 영웅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피 여사는 지난해 7월 27일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내 건설된 '추모의 벽' 완공식 및 헌정식에 참석한 후 트레인 일병의 이름에 헌화했고, 이후 딸 하버스씨와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찾았다며 '오빠'의 이름이 한국과 미국의 기념관에 새겨줘 영원히 기념된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미국 해병 존 트레인 주니어(JR) 일병의 이름 위에 장미꽃이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 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서 미 해병 존 트레인 주니어(JR) 일병의 조카 자매와 그 아들이 트레인 일병의 이름 위에 헌화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새겨진 미 해병 존 트레인 주니어(JR) 일병의 조카 수전 하버스씨가 외삼촌의 이름을 가르키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미 해병 일병 편지, 타임지 등에 게재...육군박물관에 보관

트레인 일병은 참전 중 머피 여사 등 가족과 많은 편지 왕래를 했는데 그 편지 일부는 시사주간지 타임지와 여러 권의 책에 실렸고, 편지 한 편은 버지니아주 노퍽의 국립 육군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하버스씨는 추념식 후 자매 및 조카와 함께 트레인 일병의 이름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한국전기념공원
한국전쟁 참전용사 제임스 딕스 미국 육군 예비역 병장(92·오른쪽)이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특파원
한국전 기념공원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족들이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 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장미꽃이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한국전기념공원
미국 메모리얼 데이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추모의 벽에 장미꽃이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4개월 전투 중 압록강 근처서 중공군 포로된 미 포병 "북한의 남한 장악 막는 게 임무"

이날 추념식에는 참전용사 제임스 딕스 예비역 병장(92)도 참석했다. 딕스 병장은 1950년 8월 야전포병 상병으로 참전해 부산에서 38선과 평양을 거쳐 압록강 근처까지 갔다가 1950년 11월 마지막 주(20~26일)에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평안북도 벽동 포로수용소의 캠프 5에서 33개월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그는 참전 이유를 묻는 말에 "북한이 남한을 장악하는 것을 막은 것이 나의 임무였다"고 답했다. 딕스 병장은 "포로 생활이 힘들었다"며 "중공군이 우리를 공산주의자로 전향시키려고 했으나 우리는 저항했고, 거의 모든 포로가 공산주의자가 되길
거부했다. 우리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벽동포로수용소
한국전쟁 중 중공군에 포로가 돼 평안북동 벽동 포로수용소에 갇힌 미군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거제시 홈페이지 캡처
한국전기념공원
에티오피아 출신 미국 주민들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의 에티오피아군 참전 기념 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당시 황실 직속 근위대인 강뉴 부대원 총 6037명을 파병해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 부상자를 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딕스 병장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포로 교환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는데 그때가 8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아들 등 가족과 함께 추념식에 참석했으며 한국전 참전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한·미 정부로부터 훈장 등 공식적인 서훈은 없었다고 말했다.

링컨기념관을 사이에 두고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맞은 편에 있는 베트남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게서는 별도의 추념식은 열리지 않았으나 참전용사·가족 등이 헌화 행렬이 이어졌다.

베트남전기념공원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베트남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을 찾고 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베트남전 기념공원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베트남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에 놓인 성조기와 꽃./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베트남전 기념공원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내셔널몰 내 베트남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에 전사자의 출신 중학교가 증정한 것으로 보이는 추모패가 놓여있다./사진=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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