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국제인도법 위반한 전쟁범죄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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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는 카호우카 댐 폭발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카호우카 댐 폭발이 러시아의 소행이라면서 "핵심 기간시설에 대한 테러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새벽 드니프로강 하류의 카호우카 댐이 원인불명의 폭발로 파괴되면서 인근 지역에 홍수가 발생했다. 범람한 강물의 수위가 건물 2층 높이까지 상승하자 주민들은 소지품 몇 가지만 다급히 챙긴 후 구조보트, 구조트럭 등을 통해 대피했다.
현재까지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향후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식수부족 등 인도주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56년 건설된 높이 30m, 길이 3.2km의 카호우카 댐은 약 3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크림반도에 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안토니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긴급회의에 앞서 "카호우카 댐 파괴로 최소 1만6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면서 "인도적·경제적·환경적으로 엄청난 참사"라고 평가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사무차장은 "이번 댐 붕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생한 민간시설 피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면서 "국제인도법은 파괴될 경우 막대한 민간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기간시설에 대해 특히 보호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댐 파괴의 배후로 서로를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국 댐 붕괴 사태를 야기했다고 비난했다. 샤를 미셸 EU(유럽연합) 상임의장은 댐 공격을 "전쟁 범죄"라고 표현했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벌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잔혹성을 다시금 보여주는 잔인무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크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러시아의 사보타주(파괴공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전직 독일 국방부 당국자 니코 랑게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드니프로강의 범람으로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댐 폭발로 시간을 번 러시아군이 이 지역에 배치된 병력을 빼 다른 전선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AFP는 실제로 과거부터 댐을 파괴해 적의 진격을 늦추는 '홍수 작전'이 빈번히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소련이 드니프로강 중류에 위치한 드니프로댐을 터뜨리는 전략을 펼쳤고, 1943년에는 반대로 나치 독일이 퇴각하며 이 댐을 다시 파괴했다.
다만 러시아는 댐 파괴로 얻는 이익이 없다고 반박하며 "키이우 정권의 명령에 따라 계획되고 실행된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 사보타주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고 밝혔다.
폭발의 배후와는 관계없이 카호우카 댐 파괴가 미칠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이 공통적 의견이다. 특히 유럽 최대규모의 자포리자 원전이 이 댐에서 끌어온 물을 냉각수로 쓰고 있는데, 냉각수 공급이 끊길 경우 '노심용융(멜트다운)'이라는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측은 "댐 파손이 아직은 원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주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안전상황 점검을 위해 자포리자 원전을 방문하기로 했다.
드니프로강 범람에 따른 환경 피해도 수십년 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오스타프 세메라크 전 우크라이나 환경부 장관은 "강이 범람하면서 주변 석유시설과 농장 등이 침수돼 하류는 농약과 석유제품으로 오염됐을 수 있다"며 "이번 사태는 체르노빌 참사 이후 최악의 환경적 재앙"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