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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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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2. 28. 10:43

국립오페라단,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서 한국 초연
"고전적인 연출과 유쾌한 음악 돋보여"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1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한 장면./국립오페라단
2024년 우리나라 전막 오페라 공연은 국립오페라단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으로 시작됐다. 올해 첫 정기 공연으로 벨칸토 희극 오페라를 선택한 만큼 국립오페라단은 음악도, 무대도 밝고 화사하게 장식했다.

지난 24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된 무대에서 이든이 지휘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빠르지도 처지지도 않는 템포로 재기발랄하면서 때론 진지한 로시니 음악의 장점을 잘 살렸다. 오페라 안에서 작곡가의 다른 작품을 비롯,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선율이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로시니 특유의 묘미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적절한 강약 조화로 무대 위 성악 파트와의 음악적 밸런스도 매끄러웠다. 다만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쳄발로 소리가 선명하지 못했던 점은 아쉽다. 레치타티보 부분 등에서 쳄발로 음색이 더 또렷이 들렸더라면 고전과 낭만주의 사이에 있는 벨칸토 오페라의 특징이 더욱 부각됐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연출을 맡은 최지형이 '연출자의 말'에 쓴 바와 같이, 페미니즘, 인권 문제, 납치, 백인문화 우월주의 등등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이 오페라의 내용은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이 문제적 작품에 최지형은 새로운 해석을 더하지 않고 고전적인 연출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국내 초연인 오페라에 지나친 연출자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작품 그 자체를 오롯이 전달하려는 배려처럼 느껴졌다. 아라베스크 문양이 가득한 빈티지한 색감의 오윤균의 무대 또한 직관적으로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같이 연출 의도나 음악, 성악가의 기량, 무대 등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공연 초반은 상당히 느슨하게 진행됐다. 1막에서는 합창을 비롯한 출연자들 사이의 호흡에서 밀도가 떨어지고 중간 중간 어색한 공백이 느껴져, 자칫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벨칸토 오페라를 향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마치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으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는 경기처럼 벨칸토 오페라 부파에 필수적인 희극적 화학작용이 일어나질 않았다. 다행히도 2막에서는 보다 속도가 붙었고 객석과 공감 포인트들이 생겨나면서 로시니 희극 오페라다운 유쾌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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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한 장면./국립오페라단
주역인 이사벨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키아라 아마루는 매우 노련하고 영리한 로시니 전문 메조소프라노였다. 그는 극장의 크기나 주변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본인의 성량과 페이스를 알맞게 유지하며 안정적인 중저음과 여유로운 고음을 바탕으로 뛰어난 멜리스마를 들려주었고 오케스트라와도 좋은 조화를 이뤘다. 무스타파 역의 권영명도 익살스러운 연기와 중후한 저음으로 바쏘 부포(Basso Buffo, 희극 오페라에서 베이스 역할)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타데오 역의 바리톤 김원과 알리 역의 베이스 최공석도 음악적으로 쉽지 않은 로시니 오페라를 잘 풀어냈다. 엘비라를 노래한 소프라노 이혜진은 컨디션 탓인지 호흡이 안정되지 않고 가창 역시 경직돼 있어 이사벨라와 축을 이뤄야 할 여성 배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뭣보다 의구심이 든 것은 린도르 역의 캐스팅이다. 린도르 역할의 러시아 테너 발레리 마카로프는 1막 아리아에서부터 빈약하고 개성 없는 발성에다 벨칸토 테너라면 응당 들려줘야 할 고음 부분도 희미하게 처리해 버렸다. 이런 요인 때문에 초반 작품이 탄력을 받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마카로프가 공연에서 전반적으로 역할을 나쁘게 수행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저 정도의 실력과 인지도라면 우리나라의 좋은 레제로 테너를 캐스팅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공연 내내 했다. 국립오페라단이라면 해외 성악가의 캐스팅에 있어서도 보다 심사숙고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작품은 이번이 한국 초연으로 알려져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제외하면 로시니의 다른 오페라들은 한국에서 별로 공연되지 않는 실정으로, 우리나라의 오페라 레퍼토리 편중 현상을 다시금 보여주는 사례다. 모처럼 보기 드문 작품이 올라와서인지 관람 당일 객석은 만석으로 보였다. 올해 국립오페라단은 이 오페라를 비롯해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퍼셀의 '한여름 밤의 꿈' 등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다양한 초연작들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해 시즌 라인업 전체를 베르디 오페라로 꾸민 것에 비해 고무적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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