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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부는 2일(현지시간) 자국 ARD 방송에 "우리 평가에 따르면 공군 내부 대화가 도청당했다"고 밝혔다. 전날 러시아 국영방송사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이 "타우러스로 크림대교를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독일군 고위 간부들의 대화 녹취를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다.
독일 국방부에 따르면 문제의 녹취는 잉고 게르하르츠 독일연방 공군 참모총장과 작전·훈련 참모인 프랑크 그래페 준장, 또 다른 장교 2명이 지난달 19일 암호화되지 않은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에서 나눈 대화로 알려졌다.
38분 분량의 녹취에서 이들은 "크림대교는 매우 좁은 목표물이어서 타격하기 어렵지만 타우러스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프랑스 다소의 라팔 전투기를 사용하면 타우러스로 크림대교를 공격할 수 있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다만 독일 국방부는 "소셜미디어에 유포되고 있는 녹음본이나 녹취록이 수정됐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며 도청의 주체가 누구인지 등 구체적 내용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전날 러시아의 독일 공군 도청 사실을 공개했던 시모냔 편집장 역시 녹취의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했었다.
이런 대화는 타우러스 배치를 전제로 했다기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정부 결정에 대비해 필요한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치권이 타우러스 지원에 회의적이라는 언급도 등장한다.
서방에서는 독일산 장거리 순항 미사일 타우러스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감한 내부 기밀을 공개함으로써 독일과 유럽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정보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나토 회원국 내 분열을 유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타우러스의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독일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야권은 물론 신호등 연립정부 내 찬성 의견에도 불구하고 확전 우려를 이유로 1년 가까이 타우러스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6일에도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타우러스 지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독일 정부는 이번 도청 경위에 대한 신속하고도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숄츠 총리는 이날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고강도로 신속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