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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는 푸틴 대통령 외에 러시아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 자유민주당 레오니트 슬루츠키,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등 세 명의 후보도 출마했다. 하지만 이들 세 후보의 존재감 자체가 극히 미미한데다 보리스 나데즈딘 등 반정부 성향 인사들의 출마도 원천봉쇄된 탓에 푸틴 대통령의 5선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의 5선 성공 여부보다 그가 과연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정부 성향인 러시아 여론조사센터 브치옴이 지난 1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82%의 득표율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1999년 12월 갑작스럽게 하차한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푸틴은 3연임을 금지한 헌법 규정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4년(2008~2012년)간 총리로 재임한 것을 포함해 24년여 동안 러시아를 철권통치해오고 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도 승리해 5선에 성공하면 2030년까지 정권을 연장하게 된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2020년 개헌으로 2030년에 열리는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 연장도 가능하다. 29년간 소련을 철권통치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론 34년간 재위했던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까지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현대판 차르'가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앞선 대선 때와는 달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도중에 치러지는 것인 만큼 푸틴 입장에서는 압도적인 득표율 못지 않게 높은 투표율도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물론 자국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투표장에 나와 자신을 찍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선거가 러시아 대선으로서는 처음으로 사흘간 치러지고, 집에서도 컴퓨터·스마트폰 등으로 신원을 확인해 투표토록 하는 온라인 투표까지 처음 도입해 실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2014년 병합한 크름반도,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 개시 후 '새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러시아 본토와 같은 투표 지역에 포함시킨 것도 전쟁 정당성 확보와 함께 투표율 제고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10~12일 4개 점령지에서 실시됐던 대선 사전투표에서는 러시아군을 앞세워 투표 참여를 강요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번 사전투표는 러시아 선관위 관계자들이 점령지 내 개별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투표토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디언은 이 과정에서 자택에서 투표 참여를 거부한 한 우크라이나 남성이 러시아군 병사들에게 구타를 당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한 러시아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구도 속에서 이번 대선은 푸틴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라며 "푸틴은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 확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