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력 인정...젊은 관객과 궁합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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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스턴트맨'의 데이빗 레이치 감독은 '불릿 트레인' '분노의 질주: 홉스&쇼' '데드풀2' 등으로 국내 관객들과 이미 친숙하다. 절친한 동료인 '존 윅' 시리즈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과 더불어 스턴트맨 출신답게 2000년대 들어 할리우드 액션물의 지형도를 바꾼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극장용 영화로는 '범죄도시4'가 데뷔작인 허명행 감독은 한국 스턴트맨의 '맏형' 정두홍 감독과 함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유명한 '신세계'의 엘리베이터안 난투 장면 등을 설계했으며,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황야'로 처음 메거폰을 잡았다.
스턴트맨으로 출발해 감독이 된 사례는 알고 보면 더 있다. 청룽(성룡)과 손잡은 '홍번구'로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던 탕지리(당계례) 감독은 '용호무사'(홍콩 영화계에서 무명의 액션 전문 배우 혹은 스턴트맨을 지칭하는 용어)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고, '구타유발자' '용의자' '봉오동전투'의 원신연 감독도 젊은 시절 스턴트맨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비명 한번 지르고 사라지는 '으악새'란 표현으로 자신들을 낮춰부르던 스턴트맨들이 이처럼 한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총지휘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속된 표현으로 '몸 쓰는 게 전부'였던 이전 세대와 달리,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나리오를 깊이 연구하고 액션 장면의 영상 콘티를 직접 제작하는 등 영화인으로 갖춰야 할 기본에 충실해지면서 잠재된 연출 재능을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숏폼 등 짧고 빠른 호흡의 영상물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과의 '궁합'이 좋다는 점도 한몫 거든다. 감각적인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어, 감정의 빌드업 없이 찰나적인 재미만으로도 영상에 열광하는 10~20대의 높은 지지를 받기에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이유로 스턴트맨 출신 감독들의 주가는 국내외 영화계에서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짐작되지만, 걸림돌도 있어보인다. 영화계의 불황으로 모험을 두려워하는 제작 풍토가 널리 퍼질까봐 다소 걱정된다. 스턴트맨처럼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기본기를 탄탄히 다진 인력들이 새내기 연출자로 나서려면 본인들의 노력은 물론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곤란한데, 돈줄이 마른 요즘 같아선 '흙속의 진주'를 발굴하기가 꺼려진다.
그럼에도 실력에 근성까지 겸비한 스턴트맨들의 감독 변신 혹은 겸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 연출이 제 아무리 어렵다 한들, 멋진 장면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살신성인 급의 용기를 지닌 자 앞에선 '못 오를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