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혁명가의 고결한 풍모는 충성과 애국으로 빛나"
|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 위원장이 직접 김 전 비서의 관에 흙을 얹으며 모든 장례 절차에 참석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서장회관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우리 당의 참된 충신, 견실한 혁명가, 저명한 정치활동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비서의 장례식 마지막까지 직접 나섰다. 그는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고인의 국장(國葬)을 주도했다. 김 위원장은 발인식이 끝나고 시작된 영결식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거행한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은 김 전 비서가 안치된 관 위에 직접 흙을 얹었다.
김 위원장은 "김기남 동지와 같은 혁명의 원로들이 있어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주체혁명 위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올 수 있었다"며 "노혁명가가 지녔던 고결한 풍모는 충성과 애국으로 빛나는 삶의 본보기"라고 추켜세웠다. 조선인민군 명예의장대는 영결식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조총 180발을 발사했다. 리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김 전 비서의 업적을 기리는 애도사를 읽었다.
리 비서는 애도사에서 "견디기 어려운 병상에서도 수령을 받들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모대기며 자기의 몫까지 합쳐 김정은 동지를 잘 받들어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고 말했다.
발인·영결식엔 각급 최고 핵심 지도층이 모두 자리했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해 김덕훈 내각총리, 조용원 당 조직비서,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 고위급 인사들과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조선중앙통신은 운구 행렬이 시내를 통과할 때 주민들이 인도에 서서 묵념했다며 관련 사진도 공개했다. 김 전 비서는 노환과 다장기기능부전으로 병상에서 치료 받다가 사망했다. 그는 1956년 당 중앙위원회에서 존재감을 처음 드러냈고, 그 이후로 60년이 넘도록 김씨 일가의 3대세습 체계를 정당화하는 사업에 온 힘을 쏟았다.
김일성종합대학 학부장, 노동신문 책임주필 등을 역임하고 당 선전선동부 부장에 이어 선전 담당 비서를 지내며 김씨 일가의 '황태자'로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