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면 별수 없어" 투잡 병행
다리 퉁퉁 붓고 '구역 침범' 다툼도
폐골판지 가격 폭락에 생활고 심화
전문가 "근본적인 복지정책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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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3시께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골목에서 만난 전규남씨(83)는 뙤약볕 아래서도 연신 손을 움직이며 손수레에 폐지를 옮겨 담았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시작한 전씨의 폐지 줍기 작업이 9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두꺼운 후드 점퍼를 입은 전씨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15시간가량 폐지를 수집하는 전씨는 최근 두 다리에 심각한 부종이 생겨 걷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다. 전씨가 폐지를 모아 한 달 동안 겨우 얻는 돈은 15만원 남짓. 라면·쌀 등 식료품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전씨는 "정말 푼돈이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먹고살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소규모 고물상 기준 폐박스(폐골판지) 매입단가는 1㎏ 당 50원. 한 수레 가득 싣고 오면 40㎏ 정도 돼 2000원 정도 받을 수 있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일당을 채우기 위해 하루 적게는 2~3번에서 많게는 5~6번씩 손수레를 힘겹게 끌며 길거리와 고물상 사이를 오간다.
이렇게 번 5000원에서 1만원 상당의 돈으로는 생계를 감당할 수 없어 이른바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해 빌딩 청소를 끝내버리고 폐지는 그다음부터 시장 문 닫는 밤 9시까지 계속 줍는 거야. 요즘은 박스 값이 아주 헐값이어서 다른 노인네 구역 조금만 침범해도 아주 신경이 날카로워. 시장에서만 채우니까 더 오래 걸리지."
폐골판지 가격이 폭락한 뒤 폐지 수집 노인들은 서로만 아니라 고물상 업자들과도 갈등을 자주 빚는다. 고물상 측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부른다며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한 소형 고물상을 운영하는 최모씨(42)는 "대형 고물상이나 폐지 처리업체 등에 2차로 납품하는 가격도 낮아 어쩔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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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5월까지 1㎏당 138원을 유지하던 폐골판지 평균 가격은 대폭 하락해 1년 만인 지난해 5월 79.6원 선까지 내려갔다. 올해 5월에는 88.9원에서 평균가가 형성되며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폐지 수집 노인들의 생활고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폐지 수집 노인이 다른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도시락 배달 등 저강도 공공일자리를 알선하거나 '폐지수집 일자리사업단'을 통해 조금 더 높은 가격에 폐지를 매입하는 등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정책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도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폐지 줍는 일을 아예 일자리로 만드는 등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부분적인 대책만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개별 경제 상황을 보다 세심히 파악하고 근본적인 복지 정책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