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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핫100 정상에 처음 올랐을 당시도 비슷했다. 디제이 케이시 케이슴이 진행하던 주한미군방송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아메리칸 톱40'를 들으며 빌보드 핫100 상위권에 오른 노래들의 제목과 가수들의 이름을 받아 적고 외우다시피 하던 40여년전 내 모습이 소환되면서 '반백년 가까이 살다보니 이런 일도 목격한다'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겐 빌보드가 국내 음원 사이트 순위 수준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요보다 팝을 즐겨듣던 1980년대만 해도 한국 가수의 빌보드 차트 정복은 아주 먼 훗날을 그린 SF영화에서나 다뤄질 법한 공상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더 먹어 모든 일에 감흥이 시들해져서인지 앞선 두 사례 만큼 충격적으로 와 닿진 않았지만, 최근 전해진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미국 나스닥 상장 소식 역시 기분좋은 전율을 안겨주는 문화적 사건이다. 어둠컴컴한 조명 아래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에서 빛 바랜 갱지로 만들어진 만화책을 읽었던 5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면 '만화 연재하는 회사가 한국도 아닌, 미국 증권시장에서 4조원에 이르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어?'라며 깜짝 놀라고도 남을 뉴스였다.
관련 뉴스 중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김준구 웹툰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밝힌 포부였다. 김 대표는 상장식이 끝난 뒤 미국 뉴욕 나스닥 빌딩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훌륭한 작품의 배급망과 지식재산권(IP)을 모두 보유한 디즈니처럼 100년 넘게 가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아시아의 디즈니'로 가기까지 절반 조금 넘게 지나온 듯 싶다"고 말했다. 평소 '국뽕'의 기역(ㄱ)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인데, 자신들의 웹툰이 원천인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으로 지구촌 대중문화 상품 시장을 오랫동안 호령해 보겠다는 야심이 담긴 이 발언 만큼은 우리 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자부심 고취 차원이 아닌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같아 설득력이 느껴졌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있기에는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태산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공개한 '2023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 및 '2023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몇몇 거대 플랫폼이 주도한 2022년 웹툰 산업의 총 매출액은 전년(1조5660억원)보다 16.8% 증가한 1조8290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같은 해 스튜디오와 에이전시 등 콘텐츠 제공사(CP)의 매출액은 5.47% 줄어든 7013억원에 그쳤고, 한해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꾸준히 연재한 작가의 연 평균 수입 또한 2020만원 줄어든 9840만원으로 집계됐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옛말대로 이처럼 극소수만 과실을 챙기는 업계 구조 먼저 손 보는 게 우선이란 비판의 목소리부터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플랫폼의 다변화로 좀 더 다양한 작품들이 좀 더 쉽게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생태계는 언젠가 문을 닫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 콘텐츠 기업이 대중문화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에서 사상 최초로 나스닥 상장을 기념해 종을 울렸다는 것은 우선 뿌듯해하고 볼 일이다. 가뜩이나 요즘은 보유한 IP의 많고 적음으로 한 나라의 문화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대 아닌가! 기분좋은 뉴스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와중에, '웹툰 종주국'에서 진정한 '콘텐츠 강국'으로 가는 담대한 여정의 출발이 이뤄진 것같아 체증이 해소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