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다 생각해"
|
지난 3일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덕성여자중학교 인근 온기우편함에서 윤지수씨(26)는 익명의 편지를 수거했다. 이 곳에서 윤씨는 8통의 편지를 꺼내 가방에 담고 새 편지지 다발을 우편함 주위에 올려 뒀다. 매주 수요일이면 해당 우편함을 방문하는 윤씨는 벌써 3년 넘게 온기우체부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연자의 마음을 느끼고, 답장을 쓰면 전하려던 사랑이 도리어 내게 돌아온다고 윤씨는 전했다. 윤씨는 이날 가방에 담은 편지를 읽고 사연자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윤씨와 같은 '온기우체부'는 전국에서 600명이 활동 중이다. 올 7월 현재 전국 10개 지역에서 66개 온기우편함이 운영 중이며 매월 1500통 가량의 편지가 날아든다. 온기우편함은 조현식 온기 대표가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7년 2월부터 시작됐다. 조 대표는 서울 종로 삼청동 돌담길에 처음 설치한 온기우편함에 70통의 편지가 날아들면서 위로와 공감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매주 화~일요일 온기우체부들은 온기 사무실에 모여 같은 순서로 모임을 진행한다. 온기는 이날까지 고민을 담은 2만6955통 편지에 손편지로 일일이 답장했다.
사람들의 고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같이 사는 친구가 이유 없이 밉다는 20대 여성의 고민, 연극영화과 재학 대학생의 진로 걱정,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어떻게 돌보며 살아갈지 모르겠다는 고뇌 등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들은 수북히 쌓여있다.
|
온기우체부로 활동 중인 권수련씨(53)는 지난주 골라 집은 고민에 자신이 미리 작성한 글을 편지에 옮겨 적었다. 권씨는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찬란함이 있다"며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썼다"고 했다.
|
온기우체부들은 자신이 전한 위로에 도리어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김한나씨(22)는 "어디에도 괴로움을 나누지 못했던 사연자가 온기우편함에 처음으로 자신의 사연을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한 일이 떠오른다"며 "위태로운 사람에게 전한 말 한마디에 자신도 위로받는 것을 보면 글이 정말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