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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객들은 모두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만큼 악명 높은 선동가였다. 그가 바로 클레온(Cleon, BC ?~422)이었는데 그는 32년간 찬란한 아테네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아테네 최고의 명정치가 페리클레스를 전쟁과 역병의 와중에 거짓 선동으로 내쫓고 정권을 잡은 사람이었다.
그는 무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두질은 고약한 악취 때문에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도 아버지를 도와 무두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회적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자라났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그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귀족들에 대하여 증오에 가까운 극도의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숨긴 채 귀족파와 손잡고 민주파 페리클레스를 공격하여 내쫓고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권력을 잡자마자 귀족들과 결별한 그가 맨 처음 벌인 일은 시민 법정의 배심원의 하루치 일당을 한꺼번에 300% 인상하는 것이었다. 이는 배심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명백한 포퓰리즘이었다. 그런 포퓰리즘 정책으로 배심원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클레온은 재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위대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그의 선동에 "아테네 시민들은 들판의 풀잎처럼 흔들렸다"고 기록했다. 그 결과 소위 사법장악(司法掌握)이 이루어졌고 불행하게도 공정한 재판을 자랑하던 아테네 시민 법정은 무너지고 말았다. 정의의 여신도 눈이 멀고 말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공정한 재판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사람들이었다. 부정이 개입될 눈곱만큼의 여지조차 없도록 하기 위하여 과학적이고 정교한 배심원 추첨기를 발명하여 사용했을 정도였다. 배심원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옆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담합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재판은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굳은 믿음에서 나온 조치였다. 공정한 사법제도야말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아테네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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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클레온이 아테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2500여 년이 지난 후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공정한 사법제도를 농락하려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뇌물을 받고, 문서를 위조하고, 위증을 교사하고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기소한 검찰과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대한 비난을 일삼더니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을 기소한 검사들을 무더기로 탄핵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들이 분변(糞便) 운운하며 내세운 탄핵 사유는 가관이다 못해 가소롭기까지 하다. 다음에는 유죄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무슨 이유를 내세워 탄핵하겠다고 나설지 자못 궁금할 지경이다. 그들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그들 스스로 감당할 몫이지만, 그들 때문에 희화화되어 추락하는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신뢰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이렇게까지 무참하게 무너뜨리며 지키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아버지"인가?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신들의 행동이 아테네를 망쳐버린 "Sykopantes ", "소송갈취(訴訟喝取)"라는 2500여 년 전의 망령(亡靈)을 불러내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그 뒤에는 아테네 시민들을 개처럼 끌고 다니다 결국 아테네를 망국의 길에 빠뜨린 선동가의 망령(亡靈)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낌새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데….
한상율 (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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