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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지 이프로페셔널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공약한 달러-페소 환전 규제 해제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외환보유액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곳간이 차지 않아 환전 규제를 풀 경우 급증할 수 있는 달러 수요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걱정이라는 얘기다.
밀레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말 100억 달러에 턱걸이하고 있던 외환보유액은 275억6600만 달러로 불어났다. 하지만 지난 19일 외환시장에 1억600만 달러를 푸는 등 최근의 추세를 보면 외환보유액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 있다. 현지 언론은 "3월 이후 외환보유액이 최저를 기록 중"이라며 "당장 환전 규제를 풀기엔 정부의 부담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는 개인의 페소-달러 공식 환전을 매달 1인당 200달러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한도 이상으로 환전을 원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암달러상을 찾는 수밖에 없다. 공식 환율과 암시세의 차이가 큰 건 이런 이유에서다. 22일 현재 페소-달러 공식 환율은 968페소지만 암달러 시세는 1440페소로 50% 가까이 비싸다.
아르헨티나에서 암달러 거래는 국민의 일상이다. 고질적 병폐인 인플레이션으로 법정화폐인 페소화의 가치는 매일 하락해 달러가 사실상 유일한 저축수단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은 정기적으로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미화 유동성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를 낸다. 이른바 '매트리스 아래의 달러'에 대한 추정치 통계다. 매트리스 달러는 현지 금융권에서 빠져나가 국민이 보관하고 있는 외환 유동성을 일컫는 통칭이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국민이 해외 은행 또는 국내외 대여금고, 또는 가정에 보관 중인 외환 유동성은 국가 외환보유액의 10배인 2777억93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전년동기 집계된 2559억2400만 달러보다 8.5%(218억69만 달러) 늘어난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액 기준으로 미국 외에 가장 많은 달러 지폐를 보유한 국가로 아르헨티나를 지목한 바 있다. '국가는 가난하지만 국민은 달러 부자'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국민이 보유한 달러가 워낙 많다 보니 일각에선 경제를 달러화하겠다고 공약한 밀레이 정부가 긴축을 통해 노리는 건 매트리스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막대한 미화 유동성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를 달러화하기 위해 필요한 미화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국민이 비축하고 있는 달러 저축을 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인플레이션이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물가안정이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페소화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저축수단으로서의 달러화에 대한 국민적 선호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이 같은 문화가 환전 규제를 해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