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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리주기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구간에서 발생하곤 하는데, 특히 금리와 부동산경기가 정점에서 합류하면 예외 없이 경제위기를 수반하곤 했다. 신흥국 환율시장을 때린 1994년 금리주기(1997년 정점 후 충격)도 그랬고, 자산버블 붕괴를 수반했던 2004년 금리주기(2008년 정점 후 충격)도 그랬다. 이는 금리주기가 대략 10년 단위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버블경제의 생멸주기(생성, 확장, 소멸)를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버블의 크기가 합리적 수준이면 단계적 금리인하와 함께 조정사이클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버블의 크기가 투기적 수준이라면, 급격한 금리인하와 함께 버블붕괴 과정(자산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부채축소과정)을 거치게 된다. 미국의 버블경제 상황을 보면, 부채발 금융위기의 발현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 상황이다.
올해 들어 미국의 금리와 부동산경기가 주기 정점에서 합류하는 등 위기의 발화 조건이 충족된 상태다. 미국의 금리주기는 2023년 7월 정점에 먼저 도달한 후 1년 동안 8차례에 걸친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주택가격은 10년간의 대세 상승 추세를 유지하며 올해 상반기에 경기 정점에 합류했다. 즉, 올해 미국의 금리와 부동산 주기가 산 정상에서 만나면서 2008년 버블붕괴 직전과 유사한 구간에 진입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의 금리주기는 2007년에 정점을 먼저 찍고, 주택가격은 1년 후인 2008년에 역사적 고점을 갱신하며 정상에서 합류한 바 있다. 이후 주택가격이 폭락과 함께 기준금리가 불과 몇 달 만에 5%대에서 '제로금리' 시대로 회귀해 버렸다.
지금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버블의 크기를 비교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등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국채와 부실 모기지채권을 사들여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 연준 자산은 2007년 1조 달러에서 2008년 2조 달러로 약 2배 정도 증가한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 자산은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환경에 힘입어 2019년에는 2배 증가한 4조 달러까지 늘어났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 이후 연준 자산은 2022년에 9조 달러를 기록하며 다시 2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버블의 크기는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 최소 4배 이상 부풀어 오른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지금의 자산버블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투기적 버블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국발 버블붕괴가 발현하면, 그간 오른 것도 없는 한국증시는 '버블 없는 버블충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투자자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다우지수에 장기 투자했다면, 4~500% 정도의 누적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에 투자했다면, 은행예금 수준에 불과한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외인 자본의 흐름에 취약한 한국증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위기 뇌관인 환율 방어선이 뚫리면, '환율 폭등-증시 폭락-부채충격'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를 막아내기 어렵다. 지금은 금융위기에 준하는 전시 상황으로 인식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특단의 금융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것은 2021년에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해 환율 방어선을 사수해야 하며, 차제에 일본이나 유럽 연합(EU)처럼 '무제한·무기한' 상설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