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전기차 화재는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시야에 전기차 화재가 '포착'된 것은 전기차 한 대에서 퍼진 불길이 주차장에 있던 약 140대의 차량을 태우면서였다. 단 한 대의 차량이 어떻게 그 많은 차량을 태울 수 있는지,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은 왜 금방 꺼지지 않는 건지 등 다양한 후속 반응들이 이어졌다. 아직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화재 원인에 대한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과 함께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 역시 몸집을 키웠다. 불안감을 넘어 일종의 '포비아'까지 이어졌다. 어떤 주차장에선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전기차 소유주를 '예비 살인마'로 규정해 매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도 있었다.
사실, 전기차 화재 발생 전까지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단어는 '캐즘'이었다. 캐즘은 첨단 기술이나 상품이 개발돼 출시된 뒤 초기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뜻한다. 현대차와 기아 역시 캐즘 돌파를 위해 전기차 대중화를 선언하며 저렴한 가격대의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과 EV3를 각각 출시했다.
하지만 '캐즘'에 '전기차 포비아'까지 더해지며, 기로에 서 있는 국내 전기차 산업이 휘청이고 있다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에 전기차 포비아는 향후 우리나라가 두고두고 아쉬워할 실책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당위적 측면에서도 전기차 포비아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불안감은 감정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기차 포비아의 양상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식의 불안감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소비자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들을 내놨다. 현대차와 기아는 자사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가장 먼저 공개하며, '포비아 달래기'에 나섰고 이후 거의 모든 전기차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제조사 공개 행보로 이어졌다.
또 현대차그룹의 경우 최근 15년 넘게 자체 개발 노하우를 축적·고도화해 완성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현대차 블루핸즈와 기아 오토큐에서 전기차 무상점검도 실시하고 있다. 당초 화재 원인으로 알려졌던 과충전으로 발생한 화재도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내겠다고 밝힌 만큼, 당장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근본적인 후속 대책이 나오는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오해와 불안을 불식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번 전기차 화재가 전기차 산업 자체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다음 달 대책을 내놓을 정부 움직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