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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료 현장 정상화를 위해 전공의의 수련 공백을 3개월까지 면제해 주고, 형평성 논란을 감수하며 의대생들의 유급을 유예해 주고 있다. 하물며 논의 대상이 아니라던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대통령실까지 나서 대화를 제안했다. 의료 현장의 파행이 더 길어지면 안 된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올 초부터 의대 증원을 놓고 평행선을 걸어왔다. 수시 접수가 시작된 지금도 의료계는 2025학년도 입학정원 원점 재검토를 가장 최우선 대화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런 요구는 정부의 모든 제안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갈등을 놓고 의사 편과 정부 편으로 갈려 열띤 토론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격정적인 토론의 결론은 언제나 '국민만 피해 본다'로 점철된다. 의사 편을 들던 이들도 환자를 버리고 현장을 떠난 의사에게는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의사들이 그동안 주장했던 의대 증원의 문제는 교육·의료와 관련된 정책 시스템의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할 것들이다. 의사 증원으로 의대 교육의 질이 나빠질 것이 우려된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의료수가 문제와 비인기과에 대한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당장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충분한 대화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혼란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환자의 목숨과 직결된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이 봐달라고 하는 곳은 이 지점이다.
고된 현장에서 부족한 인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을 보는 국민의 마음에는 감사와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의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꼼꼼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인력을 늘리는 데 찬성하는 것이다. 정부의 증원 결정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해도 지금 현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국민에게 공감받기 힘들다. 2025학년도 증원 원점 검토는 불가하다는 근거를 내놓으라고 말하는 의료계에 국민은 "2027학년도 증원부터 논의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정부도 7개월간 의료계와 건설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응급실 혼란 등 의료 현장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정부를 응원하던 국민들마저도 정부 책임론을 입에 담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료계는 대화 조건을 현실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정부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사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의 상황을 보며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자"는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