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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 정의대로 한다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것이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만, '콘텐츠다운 콘텐츠가 없다'는 말도 현실이다. 즉 정보 전달의 내용물인 콘텐츠가 강력할 때, 그 콘텐츠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강력하다. 그래서 결국 '승부는 콘텐츠다'라는 말도 통용된다. 그만큼 각종 소통수단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콘텐츠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문화도 정치도 결국엔 '콘텐츠'에 달려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정치콘텐츠를 '먹사니즘'이라고 표현했다.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미겠지만, '말장난'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치주의'의 상징이 된 것과 집권 후 '자유와 연대'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 것에 비하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가 시골 동네 '야바위판'으로 비하되는 것도 정치권의 '콘텐츠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과 '내로남불'의 조국 사태로 인해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이 없어졌다. 586 운동권은 민주주의와 통일에 헌신한 세력이 아니라, 위선으로 가득찬 기득권 카르텔(패거리)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줬다.
며칠 전 작고한 장기표 선생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떠오르는 이유다. 두 분 모두 누구보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고도 낡은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이지만, 국가의 민주화 운동 보상금조차 거부했던 모습이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죽는 날까지 어떤 특권도 누리지 않았고, '특권 폐지'에 헌신했던 모습을 보며, 그 누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이 바로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콘텐츠다. 정치인에게는 국민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승만 박사도, 김구 선생도, 박정희 대통령도, 그분들이 추구했던 민족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콘텐츠가 너무도 강렬했기에 아직도 국민의 가슴속에 '큰 울림'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안 그랬나? 두 분 모두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거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경제론'을 가지고 절망적인 IMF 구제금융 사태에서 희망으로 떠오른 것 아니겠는가? 이는 국민통합을 내세운 노무현, 경제를 일으킬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 이명박 대통령도 같다. 모두 자신만의 캐릭터와 이미지로 정치적 승부수를 펼친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 대표는 그런 콘텐츠가 없다. 한동훈이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비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한다는데, 차별화의 내용이 없다. 기껏해야 확인되지도 않는 '국민 눈높이'를 가지고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딴지'를 거는 것이 전부다. 채해병 특검 조건부 수용도, 의대 증원 유예도, 왜 '딴지'를 거는 것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당 대표가 된 뒤 윤 대통령 국정운영 '발목잡기'와 '훈수 두기'가 전부다.
이는 '차별화'가 아니라 '발목잡기'다. 야당이 발목잡기를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마당에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발목잡기라니? 그 누가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발목잡기를 차별화로 여기는 일부 언론과 한동훈 참모진의 '형편없는 실력'이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공멸을 부르고 있다.
한동훈 대표가 진정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고,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면, 자기만의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콘텐츠'를 갖추기 바란다. 매번 '국민 눈높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발목잡기 놀이'나 하지 말고, 본인이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한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정치적 캐릭터와 이미지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과 티격태격 싸우는 '반일(反日)'이 아니라, 일본을 앞서는 '극일(克日)'을 해야 하듯이, 진정한 차별화는 한동훈 대표가 '새로운 콘텐츠'를 갖출 때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한동훈 대표가 더 큰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딴지'를 걸 것이 아니라, 더 통 크고 더 원대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정치를 포기하든가!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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