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조성준의 와이드엔터]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단상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05010002144

글자크기

닫기

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10. 07. 10:42

멀어졌던 대중과의 거리, 올해부터 줄이려는 움직임
황정민 박보영
배우 황정민(왼쪽)과 박보영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부대행사 '액터스 하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때는 군 제대후 복학했던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영화제가, 그것도 바다와 술이 넘실대는 부산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놀기 좋아하는 같은 과 복학생 동기들과 '우리들만의 수학여행'을 떠났다.

출발 전 '못해도 하루에 영화 5편은 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심이 헛된 꿈이었다는 걸 부산 도착 다음날 바로 깨달았다. 간밤에 들이킨 술로 속이 좋지 않아 영화 상영 도중 화장실 들락거리기 바빴다. 또 밤을 새우다시피 한 탓에 극장 의자를 침대삼아 마음껏 숙면을 취하던 중, 얼마나 코를 골아댔는지 뒷좌석 커플 관객이 발로 의자 뒤를 세게 걷어차 일어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1회때 과도한 음주로 인한 후유증을 이겨내고 본 '크래쉬'와 '공각기동대' 등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깊이 새겨져있다.

자동차 충돌 사고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상성욕자들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성적 결합을 예견한 '크래쉬'의 결말부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고를 당하고도 공허한 눈빛과 나른한 손짓으로 서로를 탐하는 장면 그리고 사이버 펑크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도입부의 주제 음악은 BIFF에서만 가능했던 시청각적 체험으로 영원히 남을 듯싶다.
이후 영화 담당 기자로 신분이 바뀌고도 BIFF 기간중 부산에서의 일과는 여전했다. 업계 사람들 만나 취재한다는 핑계로 지난 6월 철거된 해운대 포장마차촌과 뒷골목 술집들을 밤새도록 누비다 바다를 가르며 떠오르는 해를 보기 일쑤였고, 낮에는 기사 쓰고 자느라 극장에서의 초청작 관람은 뒷전인 출장이 매해 가을 반복됐다. 부산행 KTX 타는 게 지겨워졌던 이유다.

영화 '보고타'
배우 송중기(맨 왼쪽부터)와 이희준, 김성제 감독, 권해효, 김종수 등 영화 '보고타' 팀이 지난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대행사 '오픈 토크'에 나서기 전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이렇게 시들해졌던 'BIFF 사랑'은 칸 국제영화제와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다녀오고 나서 다시 뜨거워졌다. 베니스와 더불어 모두가 흔히들 '세계 3대영화제'로 받들어 모시는 칸과 베를린이 일반 관객들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몇 차례 경험한 바로 특히 칸은 유명 영화인들과 수출입 업자 등 전 세계 영화산업 종사자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다. 주요 초청작 상영 등 대부분의 공식 행사는 축제의 진짜 주인공인 일반 관객들이 접근하기조차 어렵고, BIFF의 '오픈 토크'나 '액터스 하우스'처럼 배우 혹은 감독과 조금 멀리서라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억세게 운이 좋으면 크로와제 거리나 특급 호텔 입구에서 할리우드 톱스타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경호원들의 제지로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는 수준에 그친다.

'더 킬러스'의 두 배우<YONHAP NO-2708>
배우 심은경(왼쪽)과 지우가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영화 '더 킬러스' 야외 무대인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몇 년전부터 BIFF가 겪고 있는 위기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연달아 물러난데 이어 정부 지원 예산까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안팎으로 빨간 불이 켜진 것과 맞물려, 출범 초기보다 높아진 듯한 '문턱'이 진짜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란 주변의 대접에 취한 나머지 전문적인 성격의 부대행사 신설 등 덩치를 키우고 분위기만 그럴싸한 예술영화들을 초청하는데만 주력한 반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일반 관객과의 소통은 도외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

다행히 지난 2일 막을 올린 제29회 BIFF는 개선의 움직임이 비교적 뚜렷해 보인다. 예전과 달리,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웰메이드 상업영화인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부터 그렇다. 예산 부족으로 해외 유명 게스트들의 부산 나들이가 줄어든 점은 다소 아쉽지만, 많은 국내 영화인들이 힘을 합쳐 그들의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같아 보기 좋다.

늘 그랬듯 '위기는 곧 기회'다. BIFF가 대중과의 접점을 다시 늘려, 올해를 반전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기대해본다.
조성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