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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만과 무지, 무지와 무명
선사 시대의 역사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쓰고 싶어도 길게 쓸 수가 없어 세계사 집필자들은 선사 시대의 그 긴 역사를 소략하게 써재끼고 문명의 새벽으로 뜀질해 간다. 긴 세월을 그렇게 슬쩍 건너뛰어 버려 지구인들이 교만해졌다면 과언일까? 현대인들은 암암리에 태고의 조상들이 자신들과는 달리 자연 상태에서 비참하게 짐승처럼 살다 간 존재들이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서 살아간다.
가령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현대 국가이론의 최고 걸작이라 칭송되는 〈리바이어던(The Leviathan)〉에서 정부도, 사회도 없는 '자연 상태'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혹하고, 짧다(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고 썼다. 그가 설정한 자연 상태의 인간이란 문명화된 인간과 대비되는 지극히 추상화된 모델에 불과하다. 홉스는 태고의 지구인들이 과연 어떻게 세상을 살다 갔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문명 이전의 삶을 통틀어 다섯 단어로 단정하는 교만을 부렸다.
인간의 교만은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엇이든 대충은 다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심대한 착각에서 나온다. 그러한 착각은 스스로의 무지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근원적 무명(無明, 컴검한 어둠)에서 생겨난다.
무명이 무지를 낳고, 무지가 착각을 빚고, 착각은 마음의 방일과 나태를 부르고, 방일과 나태는 뿌리 깊은 교만이 되어 지구인을 더욱 어리석게 몰고 간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컴컴한 어둠인데도 현대인은 문명의 맨 꼭대기에 서서 과거의 지구인들이 야만적이고 원시적이었다고 깔보고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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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단한 먼 과거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기에 지금껏 역사가들은 지구인의 역사를 단순한 모델로 설명해 왔다. 지금도 많은 역사가는 각 시대의 주요 도구와 기술력에 따라서 지구인의 역사를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나누고 대체로 단선적인 나선형의 발전 과정으로 서술한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살펴서 고대 노예제에서 현대 자본주의까지 역사 발전의 보편적 다섯 단계를 제시했다. 그 이론이 바로 냉전 시대 지구 절반의 교과서에 정설로 채택됐던 계급투쟁설이다. 모두 일면 그럴싸하지만, 과연 그런 단순한 내러티브에 역사의 진실이 담길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먼 과거 지구인의 생활에 대해서 대체 무엇을 제대로 안다 할 수 있을까?
◇ 괴베클리 테페의 충격파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동남부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은 1994년에야 시작됐다. 그것은 지구인의 교만을 깨뜨리고 무지를 일깨우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지구인들은 역사책에 1만년 전까지도 지구인들이 기껏 수십 명 단위의 작은 무리를 짓고서 수렵채집으로 살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농경을 터득해 정착하게 되면서 지구인의 공동체는 수백, 수천, 수만 명 단위로 크게 자라났고, 인구가 밀집한 도시가 생겨나고, 또 도시가 연합해 영토국가를 이뤄지면서 비로소 문명(文明, civilization)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단선적인 발전 사관이 역사학계의 일반 지식으로 굳어져 있다.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은 그러한 도식적 역사관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수십 번 반복된 고고학계의 탄소연대측정법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테의 거대한 돌기둥은 1만1900년 전까지 소급된다. 그 거대한 돌기둥에 새겨진 다양한 형태의 짐승 문양과 종교적 상징은 지구인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다. 농경 발생 이전부터 지구인들은 정교한 자연과학적 지식, 고도의 기술력, 예술적 감각은 물론, 추상적 사고력까지 겸비한 높은 수준의 문화인(cultural man)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수십 톤의 암석을 자유자재로 깎고 날라 원형의 정교한 거석(megalithic) 구조물을 구축한 그들의 솜씨와 재능은 교만한 현대인을 고개 숙이게 한다. 누구인가, 저 커다란 돌기둥 뭔가 상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정교한 부각(浮刻)을 새겨놓은 그들은?
◇ "독수리 비석"의 비밀
고고학의 일반론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는 당시 수렵채집인들의 신전이었다. 대체 사냥하고 낚시하고 야생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 먹고 살던 사람들이 대체 무슨 도구를 써서 수십 톤 무게의 거대한 암석을 잘라 수천 년 후 문명화된 사회에서나 만들 수 있었을 듯한 거석 구조물을 만든단 말인가? 역사학의 정설로는 설명될 수 없기에 항간에선 수만 년 전 빙하기에 명멸했던 태고의 문명이 있었다는 가설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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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때 갑자기 강추위가 엄습했는가에 대해선 설이 분분한데, 그중에 외계 행성이 지구의 대기권에 부딪혀 폭발하면서 북반구를 잿더미로 덮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외인성 재앙으로 지구 위에 살아가던 맘모스를 위시한 여러 동물이 멸종되었고, 지구인들은 생멸(生滅)의 기로에서 천 년의 암흑기를 거쳐 가야만 했다. 괴베클리 테페가 형성된 시기가 바로 그 영거 드라이아스의 소(小)빙하기였다. 그런 맥락 속에서 보면, 괴베클리 테페가 외계 행성이 불러온 전 지구적 재앙와 무관할 리 없어 보인다.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괴베클리 테페의 돌기둥에 새겨진 여러 동물 문양을 천체의 별자리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University of Edinburgh) 공대의 스웨트만(Martin B. Sweatman) 교수는 치크리시스(Dimitrios Tsikritsis) 박사와 공동으로 2017년 괴베클리 테페의 기원을 밝히는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 이 논문은 고고학자들이 "독수리 비석(the Vulture Stone)"이라 부르는 거대한 돌기둥에 새겨진 여러 상징물의 의미를 천문학적 지식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독특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컴퓨터로 고대 아나톨리아 지역의 별자리를 분석하여 독수리 비석에 새겨진 상징물과 대조함으로써 스웨트만 교수는 괴베클리 테페가 외계 행성 폭발의 참혹함을 기록한 증거물이란 도발적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이에 대한 고고학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데.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