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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우리 사회의 ‘가족 신화’ 직격하는 ‘보통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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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10. 15. 10:58

상류층의 위선·도덕적 해이·가족 이기주의, 날카롭게 헤집어
보통의 가족
영화 '보통의 가족'이 16일 개봉한다. 사진은 극중 형제인 두 주인공 '재완'(장동건·왼쪽)과 '재규'(설경구)가 자식들의 일로 대립하는 장면./제공=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허진호 감독의 작품들에는 의외로 서늘한 기운이 배어있다. 대표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행복' 등을 보면 마냥 따뜻하고 섬세한 것같지만, 밑바닥에는 유한한 삶과 사랑을 대하는 냉정하고 관조적인 태도가 깔려 있다.

16일 개봉하는 '보통의 가족'에도 허 감독 특유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자식의 안위 앞에서 추악한 본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가진 자와 배운 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위선과 도덕적 해이, 속물 근성을 직격한다.

돈되는 일이라면 살인을 저지른 재벌 2세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도덕 규범을 중시 여기는 자상한 성품의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형제이면서도 이렇듯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서로의 신념을 인정하며 각자의 인생 기준을 고수하던 이들은 어느 날 자녀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 화면을 보고 난 뒤 갈등에 휩싸인다. '재완'은 유학 준비중인 딸 '혜윤'(홍예지)의 앞날을 위해 범죄를 은폐하려 하고 '재규'는 아들 '시호'(김정철)의 자수를 고집하는 와중에, '재규'의 아내인 '연경'(김희애)은 시아주버니의 의견에 동조하며 남편을 압박한다.

보통의 가족
영화 '보통의 가족'의 '재완'-'지수'(김수현·왼쪽 사진) 부부와 '재규'-'연경'(김희애) 부부는 자녀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 화면을 확인한 뒤 대처 방식을 두고 딜레마에 빠진다./제공=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극중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는 상호 대칭과 대립으로 엮여 있다. 문과와 이과가 가장 선망하는 직업인 변호사와 의사를 형과 동생의 직업으로 각각 설정한 게 대칭이라면, 아내들의 관계는 대립에 가깝다. '재규'보다 연상으로 가정과 일 모두 완벽을 추구하지만 아들의 잘못을 감추기 급급한 '연경'과 달리, 떡집에서 태어나 상처한 변호사에게 '취집'(취업과 시집의 합성어) 온 '지수'(수현)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이 같은 인물 구성은 대한민국 중산층 이상을 오랫동안 지탱해 왔던 '가족 신화'의 헛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기 위한 주된 장치로 사용된다. '가족은 무조건 보호해야 하고 같은 편이어야 한다'는 믿음과 '잘못한 자는 가족일지라도 처벌받아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재규'와 '재완' 그리고 '연경'과 '지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어 딜레마 해결의 마지막은 도입부와 완벽한 수미쌍관을 이루며 충격적인 파국으로 막을 내린다.

출연진 가운데 '창궐' 이후 6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동건의 '땅에 발을 딛은' 연기는 다소 낯설 수 있음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해 온데다 극중 '재완'이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인 탓에 관람 전까진 살짝 우려가 앞서지만, 막상 보고 나면 진한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가 2012년 출간한 소설 '더 디너'가 원작으로, 네덜란드·이탈리아·미국에서 한 차례씩 영화화됐다. 여유가 된다면 비교해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15세 이상 관람가.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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