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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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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10. 22. 10:10

연주가 아니라 공연인 바그너의 오페라
시각적 효과 바탕으로 시대정신 반영한 무대 절반은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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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탄호이저'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지난 몇 년간 지속된 레퍼토리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 최근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한국 초연된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이나 퍼셀 작곡의 '한여름밤의 꿈',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등은 우리 오페라계에 큰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 무대에 올린 오페라 '탄호이저'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고 국립오페라단으로서도 오랜만에 공연하는 바그너 작품이기 때문에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이러한 기대는 필립 오갱이 지휘를 맡고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지난 17일 개막일의 서곡 첫 부분부터 우려로 변했다. '탄호이저' 서곡이 가진 경건한 장대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탄력과 밀도가 떨어지는 연주가 지속됐다. 이전 '죽음의 도시'에서 들려줬던 연주력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느슨하고도 조화롭지 못한 사운드였다. 이미 호른의 시작에서부터 응집력이 떨어졌던 까닭에 이후 도도한 물결처럼 굽이쳐야 할 현악도, 금관의 강력한 터치도 들리지 않았다. 서곡 마지막 총주 부분에서도 거의 모든 파트가 예각이라고 느낄 수 없는 뭉툭한 소리로 일관했다. 3막의 전주곡에서 나타나야 할 섬세한 서정성도 들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콘서트에서 감상했던 국립심포니의 탄호이저 '서곡'을 기억하기에 더욱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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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탄호이저'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이러한 분위기는 공연 내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막에서는 심지어 하프까지 지나치게 큰 음색으로 분위기를 해칠 정도로 전반적으로 음악적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 3막에서 탄호이저의 처절한 독백 '로마 이야기(Innbrunst im Herzen)'가 펼쳐지는 동안 금관의 긴장감 없는 음색은 가창의 영역까지 침범할 정도였다. 실망스러운 연주는 합창에서도 이어졌다. 국립합창단과 더불어 노이오페라코러스까지 무대에 오른 합창 또한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바그너 작품은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의 귀는 외국의 수준 높은 공연영상이나 음반을 통해 오히려 높아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이런 점까지 고려해 객석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연출을 맡은 요나 킴은 순수한 여성이 남성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바그너의 전형적인 여성 서사를 깨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요사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전위적 오페라 연출에서 자주 눈에 띄는 추세 중 하나다. 요나 킴은 현대적인 무대 장치와 상징적인 의상, 세련된 조명을 활용하여 고결한 정신과 타락한 육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양면적 성격을 부각 시켰다. 엘리자베트와 베누스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대신 여성 배역이 느끼는 갈등과 감정적 연대를 새롭게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촬영기사가 직접 무대에 등장해서 현장의 이면을 즉석에서 영상으로 재현하는 시각적 효과를 동반했다. 이 또한 올여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비롯한 요즘 유럽 오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시도다. 이러한 영상화는 같은 톤의 무대디자인과 함께 60~70년대 유럽의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빈번히 등장하는 영상이 작품에 대한 시각적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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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탄호이저'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전통적 서양 회화의 도상에서 푸른색은 순결한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주로 세속적 사랑, 정열, 관능 등을 상징하는 유혹의 색상으로 쓰인다. 그런 이유로 엘리자베타는 푸른색 의상과 순결을 의미하는 흰색의 혼례복을, 베누스는 붉은 의상을 입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말에서 원작과 달리 엘리자베트와 탄호이저는 동시에 세상을 등진다. 엘리자베트의 구원이 아니라 탄호이저 자신의 속죄로 매듭짓는 것이다. 그리고 붉은 옷의 베누스가 마치 성경 속 성모 마리아와 같이 아기를 안고 선 장면으로 막이 내린다. 배덕의 상징인 여인이 지고한 성모처럼 표현된 것에서 구시대적 관념을 전복하려 한 연출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베누스 궁전 여성들의 몸을 관음적 시선으로 훑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 같은 기조와는 배치되는 것이라 불편함을 줬다.

탄호이저 역을 노래한 하이코 뵈르너는 2막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바그너를 노래하는 테너로서 손색이 없었고 엘리자베트를 노래한 소프라노 레나 쿠츠너 또한 무난하게 배역을 소화했다. 이날 가장 돋보였던 성악가로 베누스 역할의 메조 소프라노 쥘리 로바르-장드르와 헤르만을 맡은 베이스 최웅조를 꼽고 싶다. 단, 볼프람 폰 에셴바흐를 맡은 바리톤 톰 에릭 리의 기량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한다.

시각적 효과를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이날 '탄호이저'의 무대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다면, 오케스트라와 합창 등 전반적인 음악적 역량은 바그너 오페라를 공연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바그너의 작품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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