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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봇물 터지는 ‘포퓰리즘’ 상법 개정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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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06. 18:00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국회의원에게 만만한 게 상법일까? 22대 국회 들어 상법 개정안이 25개 이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그 법안 중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을 개정하려는 법안이 반 이상인데 대부분 법 원리에 맞지 않고 불필요하고 해로운 법안들이다.

대표적으로 박균택 의원 등 11인 의원안을 보면 상법 제382조의3의 표제부터 '이사의 충실의무'에서 '이사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로 변경하려 한다. '충실의무'는 원래 있던 것이고 '주의의무'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이 '주의의무'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다. 민법 제681조(수임인의 선관의무)는 "수임인은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위 개정안은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에 "이사는 회사의 수임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이하 '선관주의의무'라 한다)로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관주의의무를 상법에 다시 규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상법 제382조 제2항에서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60년 이상 이 준용규정이 적용돼 왔는데, 준용규정은 그대로 두면서 일부 내용을 한 번 더 규정하려 한다. 같은 내용을 같은 법률에서 두 번 규정하면 법률이 허접스럽게 된다.

개정안 제382조의3 제2항은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제2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이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 재산을 편취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이 규정은 1997년 외환위기 끝에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면서 1998년 12월에 도입한 규정이지만, 사실 이 규정은 쓸모없고, 무언가 크게 개선된 것처럼 연출하기 위한 쇼였다. 왜냐하면 이사가 그 업무를 집행 과정에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왕에 들어온 이상 그냥 두어도 무방하다.
개정안 제382조의3 제3항은 수용하기 어렵다.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 말이다. 여기서 '총주주'란 지배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로 읽힌다. 이것은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사는 위임계약관계에 따라 본래 회사에 대하여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는데, 여기서 '회사'라는 표현에는 당연히 모든 '주주', 즉 '총주주'를 포함한다. 회사는 사단법인으로서 사람, 즉 주주가 모인 단체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한 직무 수행이 바로 총주주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총주주라는 표현이 없더라도 이사는 당연히 주주를 포함한 회사에 대해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제3항의 '노력하여야'라는 표현도 문제다. 법률에 '노력'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예컨대 '환경정책기본법'이나 '아동복지법' 등에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국민 등의 의무로서 "환경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 아동전용시설을 설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있다. 이는 국가와 행정청의 책무나 국민의 일반적인 의무의 하나로서 행정법과 같은 공법(公法)에서 나타나는 훈시적 규정이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여 당사자 간의 분쟁을 명료하게 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법과 상법 같은 사법(私法)에서는 이와 같은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의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런 규정은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당연한 것을 법으로 규정해야 할 만큼 한국 국민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제3항에 "특정주주의 이익"이라는 표현에서, 그 특정주주란 누구를 의미하는지 불명확하다.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도, 이익 침해는 당연히 부당한 침해가 문제 되는 것이므로 굳이 이런 표현을 둘 필요가 없다. '정당'과 '부당'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서 법률 적용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제3항 후반은 전체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을 규정하는 것인데,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속임수일 뿐,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일종의 포퓰리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삽입됨으로써 소액주주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크게 보장된 것으로 오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재 충실의무 규정 개정 자체가 소액주주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의 통과는 소액주주들의 승리로 여겨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이 규정을 근거로 이사를 상대로 쉽게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확보된 것으로 오해하게 되고, 소송의 빈발이 우려되지만, 이처럼 추상적 규정에 따라 보호되는 구체적 법익은 거의 없다. 이사를 상대로 소송해 봤자 원고 승소 가능성은 희박하고 소득은 없다는 말이다.

개정안 제382조의3 제4항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에게 "환경과 사회 요소까지를 고려"해도 좋다는 제4항은 이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제한 없는 재량권을 부여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경영행위가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충실의무 조문 개정안이 기업 경쟁력 강화와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며, 기업의 적극적·모험적 도전정신 고양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기업과 소액주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상법 체계만 망가뜨리는 이런 '포퓰리즘' 법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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