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르포] ‘한강 신드롬’ 무색…잇따라 사라지는 ‘작은도서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07010003639

글자크기

닫기

임상혁 기자 | 공주경 인턴 기자

승인 : 2024. 11. 09. 08:30

'작은도서관', 남녀노소 찾는 '지역 광장'
예산 부족 등으로 5년간 20% 사라져
전문가 "지역 구심점 역할…잘 꾸려가야"
clip20241107172818
5일 서울 은평노인종합복지관 작은도서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독서하고 있다. /공주경 인턴
"여긴 우리한테 너무 소중한 공간이야. 산책도 하고 책도 보고 얼마나 좋아."

5일 오전 서울 은평노인종합복지관의 작은도서관은 이른 아침부터 책을 읽으러 온 노인들로 북적였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최모씨(76)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곳에 있어 좋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해 매일 이곳을 찾고 있다는 그는 "어떤 할머니는 건강책을 꺼내서 수첩에 적어가기도 했다"며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복지관으로부터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초록길도서관'에선 누워 책을 읽는 아이들과,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성인들이 보였다. 도서관 한편엔 작은 도예 작업 공간이 있어, 아이들이 도예 수업을 들으며 접시를 빚고 있었다.

7년간 도예 선생님으로 근무해온 박모씨(45)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아지트처럼 도서관을 찾아온다. 은평구 '워킹스쿨'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지역 일자리 차원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데려다 주기도 한다"며 "도서관 애들끼리 '그린웨이 라이브러리'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축제에 나가기도 했다. 이곳이 어린이들의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책을 빌리던 권민경씨(42)도 작은도서관이 책을 빌리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문화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이곳은 독서뿐만 아니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 아이부터 지나가는 할머님까지 책을 매개로 나이대와 상관없이 즐기는 휴식처 같은 곳"이라며 "작은도서관을 넘어 문화센터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clip20241107172948
5일 서울 은평구 초록길도서관 안에서 어린이들이 도예수업을 받고 있다. /공주경 인턴
작은도서관이 지역 주민에게 독서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문화센터, 광장으로서 기능하면서 동네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로 문을 닫고 있는 곳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독서 열풍'이 무색해지는 풍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작은도서관의 휴·폐관 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에는 전국 6672곳 중 648곳(약 9.7%)이 휴·폐관했지만, 지난해는 6785곳 중 1379곳(약 20.3%)이 운영을 중단했다. 다섯 곳 중 한 곳이 사라진 셈이다.

예산 부족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작은도서관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도서관당 연간 평균 예산은 약 1498만 원으로, 인건비 761만 원, 운영비 479만 원, 도서 구입비는 약 258만 원이다. 그러나 연간 총 예산 500만원 미만인 도서관이 공립 301곳(19%), 사립 3054곳(57.8%)으로, 다수의 도서관이 열악한 운영 여건에 놓여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은도서관은 직원이 부족하거나 면적 편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 작은도서관도 6인용 테이블 1개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4개월간 봉사해온 라일림씨(77)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도서 관리 봉사자 경쟁률도 치열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clip20241107173149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초록길도서관. /공주경 인턴
초록길도서관도 주민들이 내는 회비와 운영 프로그램 수익, 기타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정말 주민들의 애정으로 12년간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앞선 도예강사 박씨는 "우리 도서관도 지원금이 부족한 상태"라며 "잘 키운 도서관 하나 열 도서관 부럽지 않도록, 있는 도서관을 잘 유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놀이공간처럼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책에 흥미를 갖게 됐다. 나도 문화센터를 가지 않아도 뜨개질을 배울 수 있다"면서 "작은도서관이 사라지는 건 너무 안타깝다. 단순히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센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선영 한남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문화는 포괄적이어야 한다. 도서관을 틀에 갇힌 시각이 아닌 융·복합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작은도서관은 책이 아니더라도 지역의 구심점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곳을 잘 꾸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clip20241107173306
5일 서울 은평구 초록길도서관 내부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한 방문객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공주경 인턴
임상혁 기자
공주경 인턴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