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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약사 대신 혁신기술 집중했더니…은행권, 기술금융 3년만에 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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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승인 : 2024. 11. 10. 18:30

올해 3분기 말 잔액 142조원…3년새 최저
2020년 이후 기술신용평가 기준 강화
“‘양보단 질’ 기조 강해져…수요 따라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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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시중은행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벤처 기업에 저리로 대출해 주는 기술금융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대출 규모로만 보면 지난 2021년 1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50만건에 육박했던 연간 누적 대출 건수도 30만 건으로 내려앉았다.

이는 기술신용대출의 한도를 정하는 기술신용평가(TCB)의 기준이 꾸준히 강화됐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기술신용대출 태도가 '양보단 질'을 중시하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은행권이 혁신 기술이 없지만 리스크가 적은 보건업·도소매업 등에 기술신용대출을 내주며 양적 성장에 골몰했지만, 질적 제고가 필요하단 금융당국의 지적에 평가 기준을 올리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결과 대출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기술신용대출은 신용이나 담보 여력은 부족하지만,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벤처 기업에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공급해 주는 대출 상품이다. 지난 2014년에 제도가 도입된 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 기업을 발굴 지원했다는 긍정적인 효과에 함께 도매업과 치과 등 기술금융과 관련이 없는 기업에도 대출이 나가는 등 부작용도 있었다.

10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의 올해 3분기 말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42조35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조4545억원(8.64%) 감소했다.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곳은 KB국민은행으로, 전년 동기 대비 8조2339억원(21.56%) 감소했다. 이어 우리은행 2조2422억원(6.12%), 하나은행 2조261억원(5.35%), 신한은행 9523억원 (2.21%) 순으로 감소 폭이 컸다.

건수도 큰 폭으로 줄었다. 4대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건수 총합은 30만100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만9166건(18.68%)이 줄었다. 가장 크게 감소한 곳은 KB국민은행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만4236건(29.68%)이 줄었다. 이어 우리은행 1만3384건(19.70%) 감소, 하나은행 1만1618건(12.95%) 감소, 신한은행 9928건(10.21%)이 감소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대출의 차주 중 소호(소규모 사업자)의 비중이 전년 3분기 말 기준 약 64%로 타 행에 비해 높은 편이었는데, 올 초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이 변경되면서 소호 차주 중 비대상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는 소매업 등 기술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업종에서도 기술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TCB 기준이 강화되면서 (기술신용대출에서) 빠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기술신용대출의 심사 기준이 강화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12월 기술신용평가 기준을 강화한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 이듬해 1월부터 적용했다.당시 금융위는 "이전까지는 기술금융의 태동기로서 양적 성장세 유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제도적 보완을 거쳐 질적 수준을 제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술신용평가가 강화된 데에는 당시 은행권이 대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의사, 약사, 소매업 등 특별한 혁신 기술이 없는 비기술기업에도 기술신용대출을 내주는 등 기술신용대출 제도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는 제도 혜택 대상을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현장 실사 등 엄격한 평가 프로세스를 구축, 기술신용대출 규모와 잔액이 줄더라도 필요한 곳에만 적정 수준으로 자금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웠다.

금융당국은 올해 4월에도 기술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기술금융 개선방안'을 발표해 기술금융 체계를 다시금 점검했다. 은행이 기술신용평가와 관련해 평가사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현장 실사를 의무화해 기술평가의 등급을 더욱 엄격하게 판정하는 등 기술금융 본연의 취지를 더욱 강화했다. 금융당국은 혁신 기술을 갖춘 기술기업이라면 기술금융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7일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여신심사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기술, 혁신성 등 기업의 미래를 고려한 대출이 확대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신용정보원 관계자는 "기술신용평가가 이전보다 강화되면서 (시중은행들이) 기술신용대출을 할 때 정말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에만 지원을 해주려고 하는 등 '양보다는 질'로 가려는 기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대출 총량을 제한하고 있진 않기 때문에 은행들이 (기업들의) 수요에 맞춰 기술신용대출을 줄여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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