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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나무교육(木育)’에 진심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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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10. 18:31

<4> 일본 '도쿄장난감박물관'
도쿄장난감박물관 체험전시실
도쿄장난감박물관 체험전시실.
지난해 도쿄장난감박물관은 스위스 베른 파울클레센터의 어린이 박물관에서 열린 '핸즈온! 콘퍼런스'에서 권위 있는 '어린이박물관상(Children in Museums Award)'을 받았다. 20개국, 32개 어린이박물관들과 경쟁해서 얻은 성과인데, 심사위원들은 '어린이를 위한 풍부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 깊은 노력을 기울인 도쿄장난감박물관에 기쁨을 전한다'면서, '앞서가는 창의성과 혁신으로, 상상력이 넘치는 놀이를 만드는 일은 칭찬할 만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더구나 세계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대학, 지방정부 및 산림업체와의 협력으로 자연과 예술의 힘에다 박물관의 믿음을 더해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람과 나무의 호혜행동을 제대로 인정받았다'며 한목소리를 냈지만, 제4차 산업혁명의 육중한 시간이 밀려오고, '디지털 디바이드'로 시름이 깊은 데다가, AI와 챗GPT에 옥죄이는 시간들이 이어지는 요즘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칭찬일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이 만들고, 문화를 전하며, 세대를 잇는 박물관. 그 각오는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은 '핸즈 온' 공간에서 이 세 가지 성과를 미리 보았다면, 과연 믿으실지. 도쿄장난감박물관 다다 지히로(多田千尋) 관장의 말에 그 신념이 녹아 있다. "인간이 맨 처음 만나는 예술은 장난감입니다. 삶의 용기와 기쁨을 주었던 장난감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이곳은 '놀이'의 매력을 '예술'의 힘과 융합시킴으로써, 창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곳입니다. 또한 장난감 박물관은 버려진 학교를 되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도쿄장난감박물관은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만든 박물관이다. 폐교를 활용하고, 자연친화적에다, 봉사자가 큰 힘이 된다는 점에 공감되어 찾아갔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곳은 비영리법인인 일본 굿토이 위원회(예술놀이창조협회)가 '세계의 장난감과 친구가 되자'는 슬로건으로 1984년에 개관한, '보고, 만들고, 논다'는 세 가지 미션에 충실한 곳이다. 폐교가 된 신주쿠의 요쓰야 제4초등학교에 문을 열고는, 모금프로그램을 통해 기부자들을 명예관장으로 모셨고, 장난감 큐레이터들의 금쪽같은 시간들이 쌓이면서 '핸즈 온' 박물관으로 천천히 유명해졌다.

놀이터로 변한 교실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수만 점의 장난감과 일본전통장난감, 마음을 치유하는 장난감들이 있고,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는 '장난감 병원'도 있다. 아이들은 기발한 나무장난감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논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은 꿈꿔봤을 신기한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천국은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동심의 세상을 되돌려 준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20% 이상의 재방문율을 기록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은 '나무놀이터'라는 점이다. 장난감 대부분이 원목소재로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잘 다듬어져 있으며, 박물관의 가구 역시 원목으로 되어있어 따뜻한 느낌을 준다. 전시되어 있는 장난감들은 대부분 구입이 가능해 그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장난감 큐레이터들도 감동적이다. 그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을 도우며 장난감의 매력을 전하는 사람이다. 낯선 장난감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새 다가와 친절하게 노는 방법을 설명하고, 놀이의 기쁨을 전해주고 있었다. 현재 등록자수는 약 350명, 10대부터 80대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보통시민들이다. 그 보통시민들 4000여 명이 연간 3000만엔 정도의 지출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융복합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이 노인복지센터와 함께 있어 이용하는 어르신들을 장난감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만들었다. 연 2회 노인을 위한 큐레이터 양성강좌가 개최되는데, 이틀 동안의 강좌에서 장난감박물관의 역사와 놀이의 매력을 배우게 된다. '자격취득 강좌가 아닙니다. 봉사활동이 전제입니다'라고 못 박은 지원조건 또한 감동적이었다.
도쿄장난감박물관의 감동은 '나무장난감을 통한 사회공헌'으로 이어진다. 신주쿠 구청과 계약을 맺고, 신주쿠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장난감박물관에서 나무장난감을 선물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무를 사용하자'는 '우드 스타트(Wood Start)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 장난감들은 구청과 자매결연을 맺은 나가노현의 목재업체들이 만든 것인데, 이를 계기로 나가노현은 나무장난감을 지역주요산업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고, 신주쿠구청은 이 운동을 여러 지자체에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임업과 목공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폐교를 되살린 '장난감 박물관'이 전국 12개소에 조성되어 있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장난감 박물관을 개설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지만, 소중한 '나무교육(木育)'의 이념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무와 숲과의 접촉을 통해 풍요로운 마음을 기르는 '나무교육'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지속 가능성과 지역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어져, 세계로 확산되는 힘을 가지게 된다. 2025년 봄에는 간사이 지방 최초로 나라현 미사토초에 '나라(奈良)장난감박물관'이 개관된다. 요시노 삼나무의 향기가 감돌게 될 그 곳은 고향 사랑을 키우는 마을의 자랑거리로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세계 곳곳의 체험하는 박물관들이 '이해하고, 느끼는 박물관'으로 변한다. 역사가 시간의 축적이듯, 아날로그가 쌓여 디지털 콘텐츠의 곳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생경한 체험이 하루아침에 폐부를 찌르는 교훈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스민다는 것, 체화된다는 것, 그런 교육에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만지고, 문지르며 순한 자연을 배우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실려 세상에 눈을 뜨는 방식이라면, 우리라고 왜 할 수 없으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박물관의 할 일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우리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지 못한 이유가 없다. IT강국의 힘이 디지털 지상주의, 그 맹목적 콘텐츠 생산으로만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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