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인센티브 상향땐 '쩐의 전쟁' 숨통
R&D 인력 근로시간 규제 완화 긍정적
업계 "특혜 아닌 경쟁력 강화 필수 조건"
반도체 업계의 숙원인 '반도체 보조금'과 '주 52시간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11일 발의됐다. 그간 직접 보조금 없이 주 52시간 규제라는 '족쇄'를 달고 뛰었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적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계속 뛰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가 크다. 다만 여당이 발의한 이 법안이 거대 야당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한국 반도체 발목잡는 '족쇄' 풀릴까이날 국민의힘이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산업계가 요구했던 안을 대부분 담았다. 우선 반도체 직접 보조금 근거조항을 신설했다. 현재 첨단 반도체 팹(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시 미국과 일본은 각각 총 투자액의 27.5%, 40%(세액공제 적용 시 54%)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반면 한국의 투자 인센티브는 투자액의 6% 수준에 불과하다. 이 법안대로 보조금이 지급된다면, 반도체 '쩐(錢)의 전쟁'에서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제조업 보조금 총규모는 2015년 584억 달러에서 2024년(9월 기준) 506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할 조항도 추가됐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면제해 주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다. 세부 기준이 어떻게 정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정 이상 연봉을 받는 핵심 엔지니어와 R&D 인력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의 '족쇄'를 풀어주는 방향이 될 전망이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으로 유연하게 R&D 인력들이 자유롭게 이를 활용해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며 "다만 MZ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견해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대기업 특혜? 반도체 전쟁 위한 필수조건"
산업계는 다만 이번 법안에서 제외된 '반도체 R&D 시설·장비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R&D 시설 및 장비 투자는 반도체 업계 주요 투자 분야로 대부분 비용 지출이 이 영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R&D 시설과 장비 투자는 회사들이 실제로 큰 비용을 투입하는 부분"이라며 "공장 건설 후에도 대규모 장비 투자가 이어지는 특성상 이 부분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높아지면 업계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의 관심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로 쏠린다. 국민의힘은 이날 발의한 법안을 야당과 협의해 이달 중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야당이 이를 수용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지만, 주 52시간 예외를 허용하는 데 대해선 부정적인 기류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요구에 대해 "(한국이) 전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하는 건 어찌 보면 수치스러운 일일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보조금 지급이나 주 52시간 예외 허용을 대기업 특혜로만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 투자유치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 경쟁력만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가 반도체산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위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의 합심으로 이 법안이 추진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