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인터뷰] 셀린 송 감독 “만국 공통 감정 인연...한국어로 밖에 표현 못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305010001832

글자크기

닫기

이다혜 기자

승인 : 2024. 03. 05. 17:47

24년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이야기
로맨스 아닌 미스터리 장르 가까워
"인생 깊이 더하는 인연 생각해보길"
셀린 송 감독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했다/제공=CJENM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 감독이 데뷔와 동시에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첫 연출작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11일(한국시간) 개막하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올라있다. 아시아계 여성 연출자의 '입봉'(정식 데뷔를 일컫는 대중문화예술계의 오랜 비표준어) 작품으로는 이례적인 행보다. 한국어 대사가 많은 장편 데뷔작으로 수상에 성공한다면 우리 영화계에 다시 의미 있는 족적이 새겨진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 해성(유태오)과 나영(그레타 리)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쁜 오스카 캠페인 기간에도 6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의 홍보를 위해 방한한 송 감독은 자전적인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했다. 그가 남편과 함께 한국 친구를 뉴욕에서 만났을 때 언어가 달라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가능한 그가 해석을 하며 자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에게 묻고 있었어요. 순간 '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전부 이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첫 장면에서 '세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인연'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인연'을 한국어 그대로 살렸어요. 이 감정에 붙은 이름이 달리 없을 뿐 전 세계 누구나 이해가능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해성과 나영의 오랜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만 영화는 로맨스가 아니라 미스테리 장르에 가까워요.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과 말을 섞는 순간에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죠. 하지만 '세 사람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내 '인연'으로 귀결되는 것 자체가 미스테리인 거죠."

패스트라이브즈
유태오·그레타 리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호흡을 맞췄다.제공=CJENM
이렇듯 '패스트 라이브즈'가 여느 디아스포라 영화와 다르게 이민자의 정체성을 내세우기 보다 인연을 강조한다.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는 '지나간 삶'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전생(前生)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생이이라고 해서 꼭 이전의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현재의 삶 안에도 '패스트 라이브즈'가 있어요. 과거에 변호사였고 현재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면 제 전생은 변호사인거죠. 부산에 살다가 서울에 와도 마찬가지고. 결국 이 영화는 우리 인생 안에 있는 전생, 어딘가에 두고 온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PAST LIVES (2023)
유태오·그레타 리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호흡을 맞췄다.제공=CJENM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미국감독조합상 신인상, 전미비평가협회시상식 작품상, 고담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 해외 유수 시상식에서 '75관'의 수상 기록을 세웠다.

"영화 '미나리' 등 한국계 이민자를 다룬 작품이 미국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생충'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이 2020년 골근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서브타이틀(자막)의 장벽을 1cm 뛰어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이게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보수적인 해외 영화제들이 문을 열었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기생충' 전에는 한국어 자막 때문에 괜찮을까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기생충' 이후에는 아무도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세계적으로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그 자체가 보편적 이야기가 되고 있는 거죠. 국적과 언어를 바꾸지 않더라도 다른 도시로 옮기고 인생을 바꾸는 일이 많아지고 있기에 이민자 이야기는 더 이상 이민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셀린 송 감독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했다/제공=CJENM
송 감독은 한석규·최민식 주연의 '넘버 3'(1997)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패스트 라이브즈'로 감독에 데뷔했다. 데뷔와 동시에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지난해부터 오스카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국내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버지께서는 작품에 대한 평가 보다는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열두 살까지 살았던 한국에서 이 작품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명 깊고 감사해요. 10년 넘게 연극을 하다 처음으로 영화 연출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시상식에 대한 부담감은 적어요. 이게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처럼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제게 일어나고 있어요. '패스트 라이브즈'가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인연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다혜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