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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추자도 “이제 제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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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완 기자

승인 : 2024. 11. 17. 11:13

예전엔 조기-멸치로 유명한 남해 어업전진기로 번성
어획량 감소 등 여러 이유로 사람떠나자 경제활력 잃어
일명 '나바론 요새' 등 추자10경풍광 제주못지 않아
38개 무인도-4개 유인도 묶는 해상관광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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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장의 길이는 565m에 넓이는 325m로 거대한 추장 얼굴 모습의 위성지도 사진. 위치는 장작평사와 석지머리, 석두청산, 망여 방향쪽이다./네이버 위성사진 부두완기자 캡쳐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을 찾아 제주도 추자도를 지난 12일 방문했다. 그리고 기자가 찾아낸 추자도 추장(추자도 위성사진 석두정산 일대)형상을 실물로 영접 했다.

추장 형상의 지형은 사이트 어디에도, 지역주민도, 면사무소도, 관광지원센터도 모르고 있었다.이들은 추자도에서 이번 기회에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추자도 번영에 이바지하는 마음으로 르포에 나섰다. 추자도 주민 이우철·이종은 씨 요청으로 르포를 작성하기 위해 사전 답사 차원에서 추자도 지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위성사진을 살펴보다, 백악기때부터 존재한 추장 모습(위성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락없는 아프리카 추장 모습이다.
추자도는 제주 북부 제주해협에 있는 유인도 상추자, 하추자, 횡간도, 추포도와 무인도 38개로 둘러 쌓인 섬이 추자면이다. 현재 인구는 10월말 현재 1586명이다.

추자도의 행정구역 변천사와 주요 역사연표에 대해 옛 문헌은 다양하게 기록했다.탐라국, 고려시대,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제주,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말까지는 전라도, 1915년 5월은 전라남도 제주군 추자면에 속했다.

옛 탐라국 지위를 찾은 시기는 1946년 8월에야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추자도인들의 지켜낸 사수도(섬 전체 천연기념물 제333호 지정, 1982년)는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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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소유 사수도. 1961~1962년에 당시 박철규 교장이 흑송 2000송이를 심어 헌법재판소로부터 실효지배를 받았다. 위는 사수도. 아래는 마을주민들이 정화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추자면사무소 제공
사수도는 완도군과 분쟁을 벌이다. 2008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추자도의 실효지배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추자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소유 땅이 되었다. 현재는 환경정화와 허가 받은 해녀 이외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추자도 역사를 알기 위해 다양한 문헌 중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고행미 석사학위 논문(2005)에서 관련 자료를 발취해 독자 이해를 돕고자 한다.

논문에서는 추자도 입도는 신라시대 문무왕(서기662년)시기 탐라국이 신라에 입조되면서, 상선들이 드나들며 마을을 형성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변천사 중 추자도의 최고의 인구 시기는 1969년 6771명이라고 논문에서 재인용됐다.

논문이 2004년 12월 31일 기록한 통계에는 어업 가구당 수입이 연간 8800만원으로, 20년전 수입으로는 매우 큰 액수라고 보여진다. 당시 전국의 어가 평균 소득은 2600만원이고, 농가 소득 2900만원이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는 모든 통계에서 보더라도 어획량 감소, 쿼터제 시행 등으로 추자도 산업환경이 변해 1년에 6만 7000명이 입도한다. 그리고 어업의존도에서 관광객에 의존하는 섬으로 변했다.

제주 본섬을 제외하고 2023년 기준 면 단위 우도는 인구 1800명 정도에 방문객은 142만명, 리 단위 가파도 29만 4000명과 마라도 35만 2000명, 비양도리 13만명이다.

훨씬 큰 추자도가 고작 비양도의 절반이라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다른 섬들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그동안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고 하지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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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여행은 제주항연안부두 여객터미널이서 송림블루오션이 오전 8시에 출발해 10시에 추자도에 도착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여객선은 오후 4시20분이다. /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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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를 출발하는 여객선 송림블루오션호 간판위에 설치된 설치품이다./부두완 기자
제주항연안부두터미널에서 날씨 상황을 체크했다. 그리고 추자초등학교 선생님께 오늘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지 물었다. 선생님의 답변은 모든 건 바다 날씨가 정한다고 했다.

승선하자 배가 잔잔한 파도를 가르지르며 추자도로 향했 제주도의 여느 섬은 길어야 20분 거리다. 그러나 추자도까지 2시간 거리다. 특히 제주본섬과 거리가 멀다 보니 제주와는 다른 문화와 방언이 쉽게 이해가 된다.

망망대해를 달리는 배안에서 첫번째 여행객을 만났다. 부산에서 지인들과 제주본섬을 여행하며, 날씨가 좋아 아침에 배타고 간다고 했다. 어떤 정보도 없이 듣고 있던 추자도라 가고싶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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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이자, 카펫트 디자이너인 프랑스 쥴리앙씨가 40일간 제주올레길 완주 스템프를 찍은 패스포트를 보여주고 있다. 추자도 올레길 미션 완료를 위한 마지막 코스18-1과 18-2칸에 선명히 찍힌 스테프를 보며 미소짓고 있다./부두완 기자
두 번째는 프랑스인 쥴리앙씨다. 추자도 방문은 제주올레길 마지막 미션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미 제주에서 40일동안 올레길을 모두 탐방하고, 마지막 코스인 18-1과 18-2길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선상에서 마지막 올레길 스탬프찍을 자리를 보여줬다, 프랑스인은 짙푸른 파도를 항해하는 선박과 호흡하며 자기만의 제주바다를 만끽하고 있다.

돌아오는길에 다시 만난 쥴리앙씨는 미션 완료한 스템프를 찍은 자리를 보여줬다. 그는 완성의 기쁨도 있었으나, 하루에 20km 나 되니 지친다고 했다.

그는 제주의 아름다움은 40일간 올레길 투어가 모두 말해 준다고 했다.

쥴리앙의 프랑스에서의 직업은 카펫트 디자이너와 뮤지션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사랑하게되어 한국어를 배웠다. 아직은 몇 개의 단어만 알 뿐이지만, 제주에 만난 현지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제법 제주다운 한마디. 여성들과 찍은 단체사진을 보여주며 "친구들은 나를 '삼촌'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공무수행차 추자도로 들어가는 제주대학교병원 연명의료팀 양진원 팀장 일행을 만났다.

그들의 업무는 저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인간의 해탈 세계를 다루는 고귀하고, 존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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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구성된 추자도해상관광협동조합(조합원 59명)이 만든 추자여행호(60톤98인승) 관광유람선이다./부두완 기자
처음 추자도를 방문한 나를 안내한 이우철 전직 교수는 화가이다. 낚시가 좋아 10년 넘게 추자도에 거주했다. 현재 추자해상관광협동조합을 구성해 추자도의 부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조합은 조합원이 59명으로, 출자금만도 8억원이 넘는다.이 교수가 안내한 관광유람선은 멈추어 있었다. 움직이면 적자라고 한다. 하루 평균 60명씩 2회는 운항해야 유지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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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시구절이 절로나오는 '거대한 바위의 몸체'는 나발래하늘길을 정상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매우 웅장하며, 사자 같은 용맹함이 베어 있다. 나바론하늘길 이라는 이름은 낚시온 외지인들이 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에서 위험한 절벽이라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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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론하늘길을 오르다 보면 말 형상이 보인다. 제주 본섬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내가 이 척박한 땅에 와서 일을하다 돌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제주 본섬 몽생이들은 오지 말라는 듯 말하고 있는 형상으로 보여진다./부두완 기자
혼자 추자섬을 걸으며, 주변 환경을 살펴봤다.

얼마전 정근옥 시인의 시집 '순례길 풍경화'의 시 '산방산에서'의 첫 머리가 떠올랐다. '얼마나 기다리고 서있었던 걸까', '저 거대한 바위의 몸체' 오름보다 높이가 낮은 추자도의 산을 하나의 바위산으로 표현하기 딱 좋은 시구절이다.

제주도 올레길은 감정선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마음을 주면 내게로 다가와 같이 속삭이고 있는듯하고 호흡도 같이 한다고 한다. 제주의 섬은 거대하면서도 작은 내 손안에 잡힌다.

추자섬은 화산이 폭팔한 형태가 아니라, 기록처럼 백약기시기부터 그대로 간직된 섬이다. 그래서 용듬벙과 마주한 나발래하늘길은 제주섬에서 보지 못한 웅장함과 새로운 맛이 있다.

그리고 추자의 10경 중 제1경은 쇠머리 섬의 우두일출관경이다. 성산일출봉과 견줄만하여 1경이라고 한다.

제2경은 거북이를 닳은 직구도섬에서의 바라노는 일몰의 직구낙조이다. 제3경은 흑검도, 사자섬, 쇠코, 쇠머리로 둘러쌓인 바다를 신대(물생이끝)라고 하는데 이곳은 고기떼가 뛰노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4경 수덕낙안은 사자를 닳은 수덕도에 갈매기와 기러기 물새들이 먹이를 잡기위해 물속에 바로 꽃히는 듯해 붙요진 이름이다. 제5경은 석두청산이다. 바로 추장님 모습이 있는곳이다.석지머리의 푸른산과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 것 같다.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은 추장형상의 완연한 모습을 그려낸 새로운 신화가 될 것이다.

제6경 장작평사는 제주의 여느섬처럼 해변에 모레사장이 없다, 대신 자갈과 자갈사이에 파도가 부닥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이다. 제7경 추포어화는 추자도 경제부흥기의 모습이라야 볼 수 있다. 한여름 추포도 앞 바다에 멸치잡이 배들이 휘영찬 불빛이 수놓을 때 그 야경은 밤바다의 꽃이라고 했다.

제8경 횡간추범도 제7경처럼 추자의 부흥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만선기를 달고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9경은 곽개창파이다. 조선시대 유배오던 관리들이 험난한 바닷길을 오다보면, 이곳에 오면 비로소 관을 벗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관탈섬이다.

제10경은 망도수향이다. 추자도 고향의 표적이다. 추자사람들은 이 두 개의 섬을 큰보물섬, 작은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제10경은 추자를 떠났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며, 이섬이 보여야 "아~ 나의 고향 추자라구나" 하는 망향비 같은 섬이다.

추자 10경을 돌아보며 1969년 인구 7000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던 추자도가 옛 명서을 빨리 되찾기을 기원했다,

제주본섬 올레길 처럼 관광객들의 감성을 마음에 담는 정첵이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국제대학교 관광학과 김의근 교수(제주관광학회 학회장)는 "추자도 해상관광은 충분히 매력이 있다. 특히 추자도 유인도 4개와 무인도 38개를 투어하는 해상관광을 키워 침체된 추자도의 경제동력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제주도는 추자도의 인구가 소멸되어가는 이유를 충분이 파악하고 있으리라 본다. 다른 섬 처럼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충분한 연구를 통해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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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추장은 망도수향의 망향비처럼 수호신이 되고자 할 것이다. 제주도 관광정책은새롭게 단장을 하고 나서야 한다, 지금 추자도의 부흥을 위한 절실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기자가 표현했다./부두완 기자
제주도는 추자도가 제주도로 편입되어 막대한 어장을 형성하며, 지역경제에 다양하게 기여했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한다. 특히 추자도에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칠때 제주도 관광은 더 새롭고, 더 다양함을 갖출 것이라는 지적을 되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르포를 마무리했다.



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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